Q : 최영미(55) 시인이 저소득자에게 지급되는 근로장려금 수급 대상이 된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문인들의 빈곤이야 새로울 게 없다지만 최씨는 5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1990년대를 대표했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그 시인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지금 한국의 시인들은 어떤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A :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연간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 아… 약간의 충격. 공돈이 생긴다니 반갑고. 그런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최씨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서 올린 글이다. 최씨의 이 글은 그동안 숨겨져 있던 문인들의 생계난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 소설가 모씨도 사정이 딱하다더라” “시인 누구도 근로장려금 받는다더라” 등의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소설가 배수아(51)씨는 “최영미 시인의 소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충격을 준 듯하다”며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고 본인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1년 동안 글을 쓰지 않고, 선인세를 받는 계약도 하지 않고, 번역도 하지 않으면, 수입이 1300만원 이하가 되기란 참으로 쉽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오늘의 베스트셀러 작가도 내일은 아는 사람에게 시간제 일자리를 달라고 부탁해야 하고, 학위가 없다고 거절당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적게 잡아도 1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시인만 6000명이다. 이들의 수입은 어떨까? 두 가지 자료를 보자. 먼저 지난 3월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인 500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2015년 예술인 실태 조사’가 있다. 조사에 응한 예술인들의 연평균 수입은 1225만원으로 집계됐고, 그 중에서도 문인들의 수입이 가장 낮아서 연평균 214만원으로 조사됐다. 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주는 창작준비금(연 300만원)을 받은 문인은 지난해 317명에 이른다. 이 재단은 창작활동 실적을 증빙할 수 있는 예술가들 중 전년도 수입이 4인가구 기준 3900만원, 1인가구 기준 146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 접수를 받아 지원자를 결정한다.
시를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문학·출판계에선 상식이다. ‘청색종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며 시를 쓰는 김태형(44)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시집 인세가 10%다. 요즘은 시가 안 팔리니까 시집을 1500부나 800부 찍는다. 8000원짜리 시집 1500부를 찍으면 시인에게 120만원이 떨어진다. 시집 한 권 내려면 빨라야 3년, 길면 5∼6년이 걸리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문학이 유지된다는 게 기적이다.”
원고료나 강연료 수입이 있지 않겠느냐고? 문학잡지에 글을 싣는 기회가 많지 않을뿐더러 실어봐야 고료도 얼마 안 된다. 편당 3만원, 5만원을 받고 시를 발표한다. 단편소설 한 편은 150만원에서 200만원을 받는다. 문인들에게 원고 청탁을 많이 했던 사보들도 2000년대 들어 우수수 폐간됐다. 강연은 몇몇 스타 작가들이 독식하는 구조다.
작가들의 빈 주머니를 채워주던 또 하나의 통로는 대학 강의였다. 상당수 문인들이 대학강사로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나 이 길 역시 막히고 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가 계속 사라지는 추세인데다 살아남은 학과에서도 강사 숫자를 해마다 줄이고 있다.
시장의 사정이 이렇게 어렵다면 국가의 지원에라도 기대를 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학 지원 예산은 해마다 축소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해마다 작가 100명에게 1000만원씩 총 10억원을 지원하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이 올 들어 5분의 1로 줄어든 게 대표적이다.
김씨는 “시집을 팔아서는 생활비가 안 나온다. 그런데도 주변의 시인들을 보면 정규적인 일자리 없이 알바로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면서 시에만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 보면 결혼도 안 하고 단칸방에 월세 사는 빈곤층 시인이 된다. 나이가 들고 독자들에게 잊혀지면 생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우리 그 얘기 좀 해요-문화계 팩트체크] 시만 써서는 생계 유지 불가능한 대한민국
입력 2016-05-22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