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부평구 산곡교회 사모님과 성도님들이 우리 아들과 남편을 위해 24시간 릴레이 기도를 했어요. 어느 날 아들 아이 입원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잠깐 들렀는데 교회 식구들이 찾아와 기도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남편이 깨어났다는 믿을 수 없는 낭보였어요. 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인도네시아 출신 앙 마리나(40)씨는 한국생활 14년차 다문화가정의 실제 가장이다. 무역회사에 다니며 한국인 남편 김한호(54)씨와 아들 병준(10)군의 병수발을 하고 있다. 모태신앙인 앙씨는 2002년 해외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고 기도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가라”는 응답을 받았다.
서울의 한 교회의 초청을 받고 물설고 낯 선 타국에 온 앙씨는 14년 연상의 비크리스천 김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신앙이 없던 김씨는 어린 신부에게 반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남편과 아들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입었다. 두 사람은 사경을 헤매다 목숨을 건졌으나 언제 건강이 악화될지 몰라 노심초사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230여명 넘어
‘인체에 무해합니다. 가습기의 때를 없애 줍니다.’
10여 년 전부터 화학물질이 첨가된 가습기 살균제 열풍이 불었다. 소비자들은 TV방송을 철썩같이 믿었다. 아이 건강을 위해 너나할 것 없이 살균제를 샀다. 사용설명서 대로 가습기의 물을 갈 때마다 부지런히 살균제를 썼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장염과 급성폐렴, 급성모세기관지염, 천식과 알레르기, 비염, 피부소양증, 축농증….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가피모)에 따르면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230여명이 넘는다.
2006년 앙씨와 김씨 사이에 첫 아들이 태어났다. 나이든 아빠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 “아들의 건강에 좋다”며 퇴근길에 가습기와 살균제를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귀가했다. 부자는 가습기 밑에서 함께 잠을 잤다.
비극은 아들이 세 살 때 시작됐다. 감기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네 병원에 갔다가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길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었다. 앙씨도 호흡기가 막히는 등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교인들은 “안색이 좋지 않으니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마저 누워버리면 남편과 아들을 돌 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건강만은 자신했던 앙씨의 남편은 중환자실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한 달 이상을 의식을 잃고 호흡곤란으로 사경을 헤맸다. “그 때는 중환자실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어요. 아들도 희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그러면 나도 같이 따라 죽을 수밖에 없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했어요.”
앙씨는 호흡곤란으로 목에 구멍을 뚫는 수술을 한 뒤 깨어나지 못하는 남편을 남긴채 아들을 안고 서울 아산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아들은 입원 2개월 만에 기적같이 병실을 나올 수 있었다. 문제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었다.
한 달여 만에 의식을 찾은 남편이 앙씨의 손바닥에 검지로 쓴 내용은 “워 아 이 니(사랑해)였다. 앙씨 가족은 퇴원 후 모든 것이 180도로 달라졌다. 직장을 다니던 남편은 우울증으로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병준이는 선천성 난청으로 청각 장애 2급을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이후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퇴원하고도 병준이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대로 가면 영영 호흡기를 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운동을 시켰지요. 다행히 지금은 산소호흡기 없이 지낼 정도로 호전됐지만 또 언제 악화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앙씨의 남편과 아들은 2012년 다행히 가습기 피해 1급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앙씨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의 건강이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가피모’ 행사에 참석해 국가와 제품사 옥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내놓은 상태다.
“한국은 선진국이잖아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어요. 국가가 보상을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사자와 공무원들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지요. 그들을 언젠가는 용서 해야겠지요. 그게 하나님의 긍휼이고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가해자의 진정한 회개가 없는데 그럴 순 없지요. 쉽게 용서하면 또 저지르거든요. 아직은 용서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4개월 손녀 잃은 할아버지의 충격
경남 창원시 D교회 김은혜(가명·47) 집사는 2007년 생후 4개월 된 첫 딸을 잃었다. 역시 가습기 살균제 후유증 때문이었다. 김 집사는 2006년 37세에 결혼했다. 이듬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생겼다. 그런데 한 달 만에 기침과 콧물을 동반한 감기 증세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여름에 시어머니가 덥다고 에어컨을 사준 것이 화근이었다. 방 안 공기가 건조해서 가습기를 틀었다. 고모는 살균제를 사다주고 잘 키우라고 했다. 그런데 한 달 후 열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딸이 폐렴 증세가 있는데 1주일이면 낫는다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계속됐다. 이틀 만에 호흡곤란이 왔다.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거기서도 답이 없어서 부산대학병원으로 옮겼다.
“기관지염은 간단하다고 했어요. 사흘이 지났지만 열이 안 떨어졌어요. 결국은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달았지요. 원인은 알 수 없고 호흡곤란이 계속됐어요. 한 달 가량 시름시름 앓다가 그해 10월 3일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손녀가 떠난 다음 날 시아버지마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금쪽같은 손녀가 시름시름 앓자 손녀를 살려달라고 며느리와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할 정도였다고 했다. 당시 76세였다.
김씨는 딸의 생전 사진을 건네면서 모자이크 처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양가 어르신들이 아직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론에 나가면 다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집사는 지난해 12월 3차 피해자 접수를 해놓은 상태이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연락이 없다고 했다.
“건강에 도움 되는 가습기 살균제가 살인병기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새벽기도회 때 하나님께 간구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 맞으세요. 저희는 너무 억울해요’라고요. 제발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그래야 내 아이가 천국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천=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숨쉬는 게 은혜입니다… ‘살균제 살인’ 진정한 회개 하도록 기도
입력 2016-05-20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