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정봉] ‘만리마’가 된 북한 주민들

입력 2016-05-20 17:36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이 죽은 후 17년 통치기간 동안 당 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다. 이유는 경제가 1980년 6차 당 대회 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김정은이 7차 당 대회 개최를 발표했을 때 과거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시대가 선포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먼저 이번 당 대회의 실망스러운 점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휘황한 설계도’를 제시하겠다는 예고는 허풍이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으나 2020년까지 경제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런 통계 수치도 제시하지 못했다. 둘째,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통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수령님들의 사상과 업적을 고수하겠다”고 했다. 김정은 나름의 통일방침도 제시하지 못한 채 조상 덕에 의지하려는 무능만 드러냈다. 셋째, 김정은이 양복을 입고 나타나서 뭔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정책 전환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과 유사한 것 말이다. 그렇지만 “자강력 제일주의로 난관을 극복하겠다”고 했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김정은이 우리의 예상을 저버리지 않은 것들도 있다. 첫째, 당 제1비서 같은 임시방편적 얼치기 직책을 버리고 그럴듯한 감투를 쓸 것이라고 예상되었는데 김일성의 오래된 ‘당 위원장’이라는 모자를 부활시켜 썼다. 유일적 독재체제를 완성한 것이다. 둘째,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면서 경제·핵 병진 노선을 고수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상도 적중했다. 전 세계가 비핵화를 요구하는 데 대한 정면도전이다. ‘세계의 비핵화’를 주장함으로써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들이 비핵화하지 않는 한 자신도 하지 않겠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셋째, 여동생 김여정을 당 중앙위원으로 진입시킴으로써 앞으로 더 비중 있는 직책을 맡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김여정은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고모 김경희도 42세가 되어서야 당 중앙위원이 되었는데 29세에 쟁쟁한 원로들을 제치고 당 서열 43위가 됐다. 북한 정권이 ‘남매 정권’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당 대회에서는 또 모순된 정책 세 가지가 제시됐다. 첫째, 미국에 핵공격을 위협하면서 평화협정과 대외관계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이명수 총참모장은 사업총화보고 때 “미국이라는 땅덩어리 자체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릴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가능하겠는가. 둘째, 자강력 제일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외부 투자가 필요한 합영합작, 경제개발구 등 대외 경제관계 확대 발전을 꾀하고 있다. 유엔의 강력한 제재 국면에서 과연 누가 북한에 투자할지 의문이다. 셋째,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면서 ‘남반부 해방작전을 단숨에 결속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이 결여됐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첨언하고자 한다. 김정은은 외신기자들에게 자신이 북한 주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라는 점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회장 출입 불허와 BBC 기자들 추방으로 폐쇄 체제만 부각됐다. 북한 주민들은 당 대회가 개최되면 휘황한 미래가 열려 생활고를 면할 것을 기대했으나 ‘만리마’처럼 달리라는 채찍질밖에 돌아온 것이 없다. 북한 주민들이 불쌍하다.

김정봉 한중대 교수 전 NSC 정보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