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서 침대에 눕히고 침대 사이즈에 맞지 않으면 발을 자르거나 신체를 늘여 죽이곤 했다. 종종 현대의학이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이 환자에 맞추는 치료가 아니라, 표준화된 진단과 치료에 환자를 맞추는 식으로 접근해 환자들마다 치료가 덜하거나 과해서 고통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반해 ‘개인맞춤유전체의학’은 마치 사람의 신체 사이즈에 맞추어 양복을 재단하듯 환자의 유전적 소인에 따라 진단하고 치료한다.
이런 시대가 성큼 다가오게 된 것은 13년 전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였던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된 이후부터다. 발전을 거듭해 10여년 걸려 분석하던 염기서열 분석이 이제는 몇 시간 만에 가능하다.
또 당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으나 불과 1000달러 정도면 충분한 시대가 됐다. 이제는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 유전체 검사를 해서 미리 최적화된 약물을 선택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필자의 병원에서도 유전체 검사 후 건강검진 자료와 비교하면서 질병 조기 진단에서부터 영양과 운동 등 맞춤형 질병 예방에 적극 적용하고 있다.
이런 유전체의학의 발전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창조과학에 반기를 드는 일일까. 처음 보스턴에서 유전체 의학을 연구하던 시절에 놀랍도록 정교한 유전체의 질서에 흥분한 적이 있었다. 누가 이 질서를 만들었을까.
인간의 DNA 안에 23쌍의 염색체가 있다. 이는 마치 23권의 백과사전세트에 비교할 수 있다. 한 책 안에는 수많은 문장이 있고 글자가 있는데 이것이 각각 유전자와 염기이다.
인간의 DNA에는 3만개의 문장(유전자)과 30억개의 글자(염기)가 있는데 300개 글자당 하나 꼴로 총 1000만개의 변이가 있다. 이 변이가 사람의 생김 모습을 모두 다르게 하고 질병의 다양성을 나타낸다. 글자(염기)의 잘못된 오타가 단어(단백질코드)의 뜻을 다르게 만들고 전체 문장(유전자)을 잘못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 질병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자 불가지론자였던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그의 저서 ‘신의 언어’를 통해 정교하고 복잡한 유전체의 신비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만난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를 이야기하고 있다. 유전체 의학의 발전은 과학의 영역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결과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란 존재와 생명이 훨씬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다는 진화론적 가설을 뛰어 넘는 초자연적인 질서와 계획 가운데 있음을 암시해준다.
진료실에서 종종 유전체의 변이들을 설명할 때마다 유전체의 변이가 문제가 아니라 계획된 유전체대로 살아가지 않고 과도한 칼로리 섭취, 음주, 흡연, 운동 부족 등 환경의 반란이 더 문제임을 깨닫는다. 비록 몸이 약하고 상대적으로 나쁜 유전자를 타고 태어났어도 그 자체에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음을 믿는다. 우리 모두가 태중에서 계획되어 질 때, 인류의 조상 첫 아담을 만드셨을 때의 하나님의 기분 좋은 독백이 있었으리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31)”
김경철<차의과대학 차움병원 교수>
[김경철의 닥터 바이블] 유전체의학을 통해 본 질서의 하나님
입력 2016-05-20 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