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 은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하부 리그의 2군을 전전하며 빛을 보지 못한 무명 선수에게 격려나 위로를 건넨 사람은 없었다. 통산 득점이 18개뿐인 스페인 프로축구 3부 리그 로르카 데포르티바의 14년차 왼쪽 미드필더. ‘선수’ 우나이 에메리(45·사진)의 축구인생은 2003-2004 시즌을 끝으로 부상과 함께 막을 내렸다.
하지만 주저앉으란 법은 없었다. 기회는 찾아왔다. 로르카 데포르티바는 그 시즌 감독이 떠나면서 비워진 사령탑을 제안했다. 부상으로 등 떠밀려 그라운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에메리는 측면에서 뛰었던 선수 시절 경험을 살려 윙어와 풀백을 활용한 변칙 전술을 구사했다. 좌우 측면의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더블 풀백’으로 활용했다. 방어에서 협력해 압박수비를 펼친 측면 미드필더와 수비수가 공격에선 최전방까지 함께 오버래핑하는 독특한 전략이었다. 이런 전략은 통했다. 상대를 하나둘 씩 무너뜨리면서 순위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은퇴 다음 시즌부터 지휘한 로르카 데포르티바를 두 시즌 만에 2부 리그로 올려놨다. 축구인생의 반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선수시절에 없었던 프리메라리가 구단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알메리아(2006∼2008년), 발렌시아(2008∼2012년)로 옮기면서 이력을 쌓았다. 프리메라리가 중위권의 강자 세비야 사령탑으로 부임한 2013년부터 에메리의 축구인생은 클라이맥스로 들어섰다.
2∼3부 리그보다 화려한 세비야의 선수구성은 에메리의 변칙 전술을 더 강력하게 만들었다. 에메리는 오른쪽 풀백이었던 세비야의 주장 코케를 오른쪽 윙어로 배치하고 그 뒤에 킥이 좋은 마리아노 페헤이라를 세웠다. 공격수 비톨로는 왼쪽 윙어로 뛰었다. 비톨로의 공격력은 올 시즌 합류한 왼쪽 수비수 세르히오 에스쿠데로와 짝을 이루면서 더 강력해졌다. 세비야는 그렇게 프리메라리가에서 가장 독특하지만 빈틈이 없는 측면 대형을 완성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비록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지만 5∼7위 사이를 꾸준히 맴돌며 중상위권의 강자로 군림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보다 한 단계 아래로, 유럽의 중상위권 팀들이 출전하는 유로파리그는 프리메라리가보다 공략하기 수월했다. 에메리는 세비야 감독 부인 첫 시즌부터 유로파리그 정상을 밟았다.
그리고 19일 스위스 바젤 세인트 야곱 파크. 세비야는 2015-2016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잉글랜드 리버풀을 3대 1로 격파하고 3연패를 달성했다. 3년 연속으로 우승하면 트로피를 영구적으로 소장할 자격을 주는 이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홈구장에 트로피를 전시한 팀이 됐다.
에메리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23일 프리메라리가 챔피언 바르셀로나와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결승전을 벌인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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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19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