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은 환경과 보건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은 그해 6월 ‘기적의 살충제’로 각광받던 DDT가 먹이사슬을 통해 새들을 떼죽음으로 몰고 간 현실을 고발한 책 ‘침묵의 봄’을 출간했다. 그 몇 주 전에는 독일제 임신구토 예방약 탈리도마이드에 의해 사지가 기형이거나 팔이 없이 태어난 아이들 사진이 전 세계 신문 1면에 실렸다. 1957년 50개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이 약 탓에 태어난 기형아는 5년 동안 약 8000명에 달했다. 당시 보건당국은 태반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방사능뿐이라는 ‘태반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산예방약으로 1941년 판매가 허용된 디에틸스틸베스트롤(DES)은 장기간에 걸쳐 자궁경부 투명세포암이라는 태아기형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래서 1971년에 가서야 임신한 여성에게 처방이 금지됐다. DES를 합성한 영국인 찰스 도즈와 DDT를 개발한 스위스의 폴 뮐러는 1948년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두 독극 물질과 탈리도마이드를 판 제약회사들은 법규 미비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수많은 화학물질 덕분에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 부작용을 미리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00년대 초 사전예방의 원칙을 채택했다.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에 대해 그 잠재적 악영향을 우려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유해성 증거가 당장 없더라도 사전에 시판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원칙에 따라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 등록제를 통해 그 안전성을 입증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부터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산업계의 반발 탓에 이미 사용 중인 화학물질 중 유통량이 연간 1t 미만인 물질은 규제를 받지 않게 됐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은 유통량이 1t 미만이지만, 호흡 독성이 확인됐기 때문에 등록대상으로 고시됐다.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이다.
임항 논설위원
[한마당-임항] 화학물질의 반격
입력 2016-05-19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