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훈육과 학대 사이] 두려운 어머니… 그 앞에서 나는 늘 ‘못난 놈’

입력 2016-05-20 04:02

변호사 이진성씨 이야기

“어머니에게 만큼은 완벽한 사람이고 싶었어요.”

첫 마디를 꺼낸 이진성(가명·49)씨는 회상에 잠긴 듯 말을 멈췄다. 이씨는 2014년부터 한 기독교 상담기관을 찾고 있다. 아들인 동시에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하며 느끼는 두려움을 감당치 못해서다.


그 두려움은 어머니로부터 출발했다. 폭력과 억압의 존재. 이씨에게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난 17일 서울 모처에서 이씨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이씨는 생후 9개월까지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신세를 졌다. 죽을 고비도 몇 차례 넘겼다. “아들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의사의 당부 탓이었을까. 어머니의 지나친 보호는 이씨를 옥죄었다. 또래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불만을 제기하면 “다 너를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보호는 점차 물리적·정서적 폭력으로 변질됐다. 사소한 잘못을 해도 매가 날아들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쌓인 불만도 아들 이씨에 대한 폭력으로 해소했다. 이씨는 스스로 ‘어머니 전용 쓰레기통’ 같았다고 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무시’였다. 형과 비교 당하며 항상 ‘모자란 놈’이란 비난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해 명문대 법대에 진학했다. 건실한 로펌의 변호사가 됐다. 그러나 어머니의 인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것, 헤어스타일 같은 게 촌스럽다며 핀잔을 주곤 했다. 이씨 담당 상담자인 안모 박사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의 반작용으로 이씨의 자존감은 매우 낮게 형성됐다”며 “지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자존감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설명했다.

낮은 자존감은 신앙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이란 ‘사랑’ ‘따뜻함’을 지닌 존재가 아닙니다. 엄격하고, 실수하면 등을 돌리며 벌을 내리는 대상입니다.” 이씨는 교회 안수집사로 주차안내자와 찬양대로 봉사하고 있다. 교회 법조선교단원으로 매년 해외에서 선교·봉사활동도 한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문제는 자녀양육에서도 드러났다. “아들을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받지 않게 완벽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엄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본인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가차 없이 손이 나갔다. 강도는 점차 심해졌다. 급기야 무릎을 꿇린 후 가죽벨트로 수십 대를 때리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이성교제를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들은 견디지 못해 몇 차례 가출도 했다. 웃는 아버지의 모습이 꼴 보기 싫다며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이씨는 자괴감에 빠졌다. 절대로 어머니의 모습을 닮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그대로 답습하는 자신의 행동에 환멸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들이 자신을 떠나갈까 두려웠다.

이씨는 같은 교회 성도의 추천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까지는 많은 용기와 시간이 필요했다. 2년여 시간이 지났지만 치유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머니와의 관계와 자존감을 회복하는 게 목표다. 최근에는 밉기만 했던 어머니에 대해 새로운 감정이 생겼다. “아픈 저를 살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간호했다는 사실이 고마웠어요. 어머니를 미워하며 욕하는 것이 어쩌면 아들을 때리는 제 자신에 대한 비난이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자녀에 대한 과보호, 과도한 집착은 대부분 자녀가 나의 소유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전문가들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소유욕이 학대와 폭력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로회신학대 홍인종(목회상담학) 교수는 “부모들은 자녀를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특히 크리스천들이 이 의식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녀의 모든 문제에 부모가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녀들의 심성과 신앙, 친구관계를 살피고 존중하라”며 “청지기 의식을 갖고 자녀를 하나님이 맡겨주신 선물로 여기며 양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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