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정승훈] 모바일 시대의 기사 쓰기

입력 2016-05-19 18:00

기자 초년 시절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기사의 양을 줄이는 것이었다. 경찰의 사건보고서를 그대로 베끼다시피 잔뜩 취재수첩에 써놓은 내용과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담당 경찰관 혹은 사건 관계자들의 발언을 원고지 2매 혹은 3매로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퍽 난감했다. 어렵사리 알게 된 사실을 차마 기사에서 뺄 수 없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핵심을 짚는 문장을 간결하게 쓰는 훈련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도저히 더 줄일 수 없다”며 원고지 6∼7매에 쓴 초벌기사를 선배들은 한 번 읽어본 다음 아무렇지 않게 붉은 색연필로 죽죽 긋고 단어 몇 개를 사이사이에 집어넣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신문지면에 나온 원고지 3매 기사에는 수많은 팩트와 발언이 녹아들어 있었다.

언론 환경이 온라인을 지나 모바일로 가는 요즘 기자 초년 시절만큼이나 기사 길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모니터 화면이 아니라 휴대전화 화면으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는 긴 기사보다는 원고지 3∼5매 정도의 기사가 독자에게 잘 읽힌다는 게 정설로 굳어져 있다.

대다수 언론사들이 카드뉴스나 사진·동영상 뉴스를 강화하는 것도 이 같은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대개 이런 뉴스에는 기사 문장이 원고지 기준으로 1∼2매, 길어야 3매 정도 붙는다. 쉽고 가벼운 기사를 주로 본다는 모바일 뉴스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것이다.

신문의 관행은 이런 흐름에 익숙하지 않다. 원고지 3매 이하의 기사는 제작현장에서 ‘단신’으로 통칭돼 왔다.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묻어 있다. 기사 길이가 길어야 좀 더 폼 나는 것이란 시각도 여전하다. 게다가 기획보도나 심층보도는 원고지 3매로 담기 어렵다. 여기서 갈등이 생긴다. 언론의 본질은 단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의제(agenda)를 세우는 것인데 원고지 3매 기사로는 이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달 초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뉴스의 길이와 관련된 보고서를 하나 발표했다. ‘긴 기사도 모바일 뉴스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Long-Form Reading Shows Signs of Life in Our Mobile News World)’는 제목의 보고서엔 독자들이 모바일의 작은 화면으로도 기꺼이 긴 기사를 읽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해 9월 미국 내 30개 뉴스 사이트에 게재된 7만4840개 기사를 대상으로 모바일 기기로 접속한 사람을 조사한 결과 1000단어 이상으로 구성된 긴 기사의 참여 시간(engaged time)이 평균 123초로 101∼999단어로 구성된 짧은 기사(57초)의 2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긴 기사를 읽는 시간이 짧은 기사를 읽는 시간보다 더 긴 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요즘 독자들이 긴 기사는 보려 하지 않고 회피할 것이라는 생각이 선입관임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퓨리서치센터는 “독자들이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글을 읽을 때 길이가 길어진다고 해서 어느 순간 자동으로 눈길을 돌려버리진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분석의 방향은 결국 콘텐츠의 질을 가리키고 있다. 기사 길이의 길고 짧음이 독자의 선택을 가르는 게 아니라 기사의 질과 내용이 독자를 붙잡는다는 원론적인 결론이다. 모바일 환경에서도 독자들은 긴 기사를 기꺼이 선택하고 꼼꼼히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다면 긴 것보다는 짧은 게 더 낫다. 이건 20년 전부터 배웠던 거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 온라인팀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