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리. 소년의 이름이다. 성은 이. 이름은 루리. 소년은 2002년 9월 3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두 손엔 엄지뿐이었다. 나머지 손가락은 없었다. 두 다리는 휘어져 있었다. 장애아였다.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양아버지 품에 안겼다. 아버지는 “친모에게 사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병원에서 연락을 해왔고 저희 부부가 아이를 키우기로 했죠”라고 말했다.
루리는 생후 2년 동안 1∼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야했다. 휘어진 다리를 감싸는 석고붕대 ‘깁스’ 교체를 위해서였다. 루리는 병원에 다녀오면 경기(驚氣)를 했다. 양어머니는 “울면서 제 등허리에서 안 떨어지려 했어요. 깁스를 자를 때 쓰는 전동 드릴 소리에 놀랐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엄마는 제가 어릴 때 엄마한테 오래 업혀서 엄마 등이 휘었다고 하세요.” 소년이 어머니를 보며 이야기했다.
깁스 교체 공포 탓인지 아이는 줄곧 낯선 사람을 두려워했다. 아버지는 말했다. “루리는 어릴 때 엄마 아빠의 손을 거의 놓지 않았어요.” 겁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10시간 안팎의 대수술만 6차례 했다.
손가락 마디를 만드는 수술이었다. “병원이 정말 싫어요. 나쁜 기억은 오래 가잖아요.” 루리의 말을 어머니가 받았다. “그래도 수술을 하고 나서 ‘아프냐’고 물어보면 항상 ‘안 아프다’고 해서 참 대견했어요.” 루리는 어머니의 말에 웃었다. “엄마! 내가 아픈데도 안 아프다고 말한 거예요. 그것도 몰랐어요?” 왜 그랬냐고 물었다. “걱정할까 봐”라는 답이 돌아왔다.
부모는 루리에게 체육 활동을 시켰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하게 했고, 피아노를 가르쳤어요. 손가락 쓰는 것 연습시키려고. 이젠 운동을 잘하는 아이가 됐죠.” 루리는 태권도 공인 3단을 땄다. 어머니는 “루리는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라고 했다. “지금의 엄마 아빠를 만난 게 더 잘된 건지도 몰라요.” 루리는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를 친부모로 여겼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초딩(초등학생을 가리키는 은어)’ 같아요. 방귀를 뀌고 서로에게 ‘내 방귀 받으라’며 줘요.” 어머니가 말을 가로챘다. “우리 가족이 동네 ‘살밴드(방귀 살포 밴드라는 뜻)’예요. 호호.” 모두 한바탕 웃었다. 가족의 사랑과 웃음이 루리를 자신감 넘치게, 운동이 루리를 씩씩한 소년으로 만든 것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급 회장이 됐어요. 제가 운동을 잘하니까 친구들이 좋아했어요. 지금도 그때 절 뽑아준 친구들 생각하면 고마워요. 그리곤 3년 연속 학급 회장이 됐죠.” 지금도 운동을 하냐고 물어봤다. 아버지가 “요즘은 게임을 하죠”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루리는 못 들은 척, 뭉툭한 손가락 마디로 스마트폰을 부지런히 만졌다. “이제 손가락으로 못하는 건 없어요. 키보드 글쓰기, 스마트폰으로 문자 보내기, 신발 끈 묶기 다 해요.” 루리가 미소 지었다. 루리에게는 10명의 형제자매가 있다. 양부모가 낳은 누나와 형 2명에 입양된 남매 8명이다. 큰 누나는 루리보다 스물한 살이 많고 제일 어린 동생은 일곱 살이 어리다.
게다가 아버지는 2009년부터 집 근처에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버려지는 아이들을 계속 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구한 생명만 900명이 넘는다. 그의 부모는 주사랑공동체 대표인 이종락(62) 목사와 정병옥(62) 사모다. 루리의 키는 170㎝, 몸무게는 70㎏. 이제 아버지보다 키가 더 크다. 이 목사는 “제가 낳은 아들 은만이는 장애로 계속 누워서 지내요. 루리가 저희 집안 기둥이에요”라고 했다. 정 사모는 “루리가 마음이 따뜻하고 넓어요. 항상 든든해요”라고 칭찬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금천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서울 마포구 필름포럼으로 가는 차 안에서 진행됐다. 이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드롭 박스(Drop Box)’가 19일 개봉됐다. 루리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년은 앞으로 무엇이 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하는 일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 목사에게 아들 이름을 루리로 지은 뜻을 물었다. “‘하나님의 뜻 이루리’란 말입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랑으로 다섯 손가락 만들고 기도하며 휜다리 세웠습니다
입력 2016-05-20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