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산업이 활황이던 1980년대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는 ‘동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부촌이었다. 탄광업주들은 돈을 포대에 삽으로 퍼 담아 차에 싣고 다닐 만큼 돈이 흔했다고 한다.
그러나 석탄산업 침체로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이 시작되면서 강원도내 탄광 160여개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구절리도 폐광의 여파로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가면서 폐가와 폐선로만 남은 폐광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폐광도시 다시 일으켜 세운 레일바이크=30여년이 지난 현재 구절리는 생기 넘치는 곳으로 바뀌었다. 연간 수십만명이 몰려드는 관광도시가 됐다. 2005년엔 숙박시설이 1곳뿐이었지만 지금은 100개에 달할 정도로 여관과 민박, 펜션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음식점과 카페 등이 계속 생겨나면서 이 일대는 활기를 되찾았다.
구절리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은 레일바이크 덕분이다. 정선군과 코레일, 코레일관광개발은 2005년 6월 구절리 폐선로에 103억원을 공동 투자해 레일바이크를 설치했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2004년 3월 31일 폐선된 정선선 구절리역∼아우라지역 편도 7.2㎞ 구간에 조성됐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강과 산이 어우러져 4계절 아름다운 곳으로 전국에 입소문이 나면서 연인과 가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누적 방문객 수는 지난달 말 현재 312만6000명에 달한다. 정선 인구가 3만9000명이니 매년 정선 인구의 8배에 달하는 관광객이 구절리를 다녀가는 셈이다.
정선군 레일바이크 담당자인 백호민 주무관은 “레일바이크는 폐허나 다름없던 구절리를 하루아침에 잘사는 마을로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정선군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레일바이크 누적 매출액은 287억2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1500억원으로 추정된다. 정선군과 코레일관광개발은 수익금을 반씩 나누고 있는데 정선군의 배당금은 지난해 4억4600여만원, 10년간 총 48억5528만원이다.
강원도 삼척의 해양레일바이크도 지역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가 총 사업비 347억원을 들여 설치한 해양레일바이크는 일제 강점기 설치된 폐철로를 활용, 근덕면 궁촌리에서 용화리까지 5.4㎞ 해안을 편도로 운행한다. 관광객들은 레일바이크를 타는 1시간 동안 해송숲과 백사장, 기암괴석 지대를 비롯해 해저도시를 연상케 하는 터널지대 등 다양한 볼거리를 구경할 수 있다. 2010년 개장 이후 매년 40만명을 웃도는 관광객이 찾는 등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운영수입도 한 해 30억원에 달한다.
삼척시 관계자는 “레일바이크는 대금굴과 해신당공원 등 지역의 관광지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황금알 낳는 폐선로=한때 골칫거리였던 폐선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받고 있다. 폐선을 이용해 만든 전국 관광지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지역경제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정선, 삼척과 같이 폐선을 레일바이크 관광지로 개발해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곡성역∼옛 기정역 17.9㎞ 구간의 폐선을 활용해 증기기관차, 기차카페, 영화 세트장, 한옥펜션 등을 조성한 전남 곡성군 섬진강 기차마을도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경남 김해도 폐선을 활용한 관광사업에 뛰어들었다. 김해시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100여년간 이어온 경전선 철도인 낙동강변 폐선 기찻길에 낙동강 레일파크를 조성해 최근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기차가 달리던 500m 길이의 생림터널은 와인동굴로 변신했고, 철교 위에는 레일바이크가 달리는 관광시설이 조성됐다. 레일파크는 오는 29일 개장한다. 김해시는 레일파크가 김해가야테마파크, 봉하마을, 클레이아크와 더불어 김해 주요 관광 인프라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도 철도 유휴부지에서 짭짤한 수익을 거두자 폐선 활용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폐선부지는 2013년 말 현재 631.6㎞, 1260만㎡인데 2018년에는 820.8㎞, 1750만㎡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폐선부지가 크게 늘고 있지만 활용 중인 땅은 300만㎡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전국 철도 폐선부지가 매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를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철도 유휴부지 활용지침’을 마련, 지난해 7월부터 시행 중이다.
지자체가 부지의 특성에 맞는 활용 계획을 수립한 후 국토부에 제안하면 심사를 거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그동안은 철도 유휴부지는 지자체와 철도공단 간 개별적인 협의를 통해 일부 활용됐지만 국토부가 이 지침을 마련하면서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지난해 강원도 삼척, 경북 포항 등 전국 8개 광역시도 9개 지자체에서 철도 유휴부지 활용 계획을 냈고 이 가운데 1건을 제외한 8건이 원안 또는 조건부 채택됐다. 사업 내용은 공원화 사업, 캠핑장 조성, 산책로 조성 등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지난해 전국 지자체로부터 첫 제안을 받은 결과 레일바이크 사업을 제외한 공원화, 산책로, 캠핑장 조성 등이 주를 이뤘다”며 “앞으로 철도 유휴부지는 공원, 산책로, 관광지 등으로 개발돼 시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폐선 활용 관광 아이템 다양화해야=전국 지자체는 폐선을 활용한 관광 아이템 개발에 너도나도 나서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정선, 삼척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 레일바이크가 운행되고 있다. 정선이 2005년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1년에 1개씩 레일바이크가 생겨난 셈이다. 14개 지역의 폐선 길이는 총 68㎞ 남짓으로 모두 785대가 선로 위를 내달리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가 ‘폐선=레일바이크 개발’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사업 아이템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 각지에 레일바이크가 우후죽순처럼 늘면서 개별 레일바이크들은 이용객이 줄어드는 추세다.
백민호 정선군 레일바이크 담당은 “정해진 파이를 나눠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같은 아이템만으로 승부한다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며 “지자체가 내세울 수 있는 나만의 필살기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원발전연구원 유승각 박사는 “일부 지자체가 레일바이크로 성공을 거두자 다른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레일바이크 사업만을 고집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추세로 레일바이크가 생겨난다면 공급과잉으로 투자비용조차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정선=서승진 기자, 전국종합 sjseo@kmib.co.kr
버려진 레일 따라 금맥 캐기 “가지 않은 노선을 찾아라”… 레일바이크의 부흥과 미래
입력 2016-05-2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