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101호는 어디인가

입력 2016-05-19 17:54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남의 말을 엿듣는 걸 좋아한다. 친구들과 카페 같은 곳에 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뒷자리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낯모르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다가 기승전결의 결말을 놓치고 자리를 떠야 할 때면 못내 섭섭하다. 바람이 좋아 문을 열어놓고 사는 요즘, 창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귀 기울이곤 한다. 고만고만한 연립주택들이 모여 있는 골목 어귀 우리 집 앞에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목청을 높이는 일이 잦다. 대화 내용은 젊으나 늙으나 많이 배웠거나 적게 배웠거나 인류 공통의 관심사, 이웃 흉보기다.

오늘 가장 뜨거운 대화의 초점은 ‘101호는 어디인가’이다. 사연은 이렇다. 4층짜리 연립주택이 있다. 한 층에 한 가구씩 살고 있어서, 편의상 1층은 101호, 2층은 201호 이런 식으로 부른다. 문제는 그 연립의 지하에도 한 가구가 살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총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 건물에 어쩐 일인지 현관에 있는 우편함은 4개. 101호에 사는 할머니가 격앙된 목소리로 토로하는 불만은,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네들 집주소를 101호라고 하는 바람에 우편물이 뒤섞이고 있으며, 그들은 남의 집 우편함을 마구 열어보는 무례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우편함을 하나 더 만들면 되는 거 아녀? 누군가 말참견을 한다. 그건 세입자가 할 일이 아닌데, 엿듣던 내가 혼잣말을 한다. 101호 할머니는 아랫집 사람들이 주차도 아무데나 하는 막돼먹은 이들이라고 강조하며 딴청을 피우고.

이따금 한 번씩 세상 모든 집의 주소를 거대한 통 속에 넣고 뒤섞어 사람들에게 하나씩 뽑게 한 다음, 뽑힌 주소로 가서 살라고 하면 재밌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만약 101호 할머니 아랫집으로 가게 되면, 주소를 B1이나 지층으로 바꿔야겠지만, 나에게 오는 우편물은 어디로 갈까. 새로운 우편함이 생길 때까지는, 역시 101호 우편함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럼 할머니네 우편물을 겉봉이나마 슬쩍 훔쳐볼 수밖에 없겠지. 할머니, 저를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