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아빠들 육아휴직 ‘그림의 떡’

입력 2016-05-19 04:30

정부부처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A씨는 한 달 뒤 둘째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다. 그는 첫째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육아휴직을 이번에 쓰려고 했지만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내 빈자리가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텐데 분위기상 말을 꺼내기 어렵다”고 전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B씨도 지난해 둘째 아이가 태어날 때쯤 육아휴직을 쓸지 고민했다. 하지만 주변에 아직 육아휴직을 쓴 선후배가 없어 생각을 접었다. A씨는 “눈치가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아내보다 내 월급이 많다 보니 육아휴직을 쓰는 게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아빠의 육아휴직을 권고하고 있지만 정작 정책을 솔선수범해서 따라야 할 각 부처나 공공기관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민간에 비해 턱없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고용보험 가입 민간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2.0%에서 매년 증가해 올해 1분기 6.5%까지 올랐다.

그러나 국민일보가 정부부처·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 등 24곳을 대상으로 2013년부터 올 1분기까지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전체 남성 근로자 가운데 만 40세 미만이거나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남성 중 육아휴직 사용자는 평균 3%대 이하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1분기의 경우 1.3%에 머물러 민간사업장의 25% 수준에 불과했다. 2013년에는 평균 1.39%, 2014년 2.02%, 2015년 2.03%의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조사대상 중 건설관리공단, 창업진흥원, 한국예탁결제원 등 3곳에서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이 단 한 명도 없었고,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2곳은 이 기간 1명만이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조사대상 중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 2%를 한 번도 넘지 못한 기관도 11곳이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남성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이 낮은 이유로 경직된 조직 내 분위기, 남녀의 임금 차이 등을 꼽았다. 우선 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하고 복지 수준이 우수한데 육아휴직까지 사용하는 데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가뜩이나 신의 직장 등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상황에서 육아휴직까지 쓰는 데 대한 우려가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이유도 무시 못 한다.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입양자녀 포함)가 있는 근로자는 성별에 관계없이 육아휴직을 최대 1년간 쓸 수 있지만 육아휴직 급여는 최대 100만원(통상임금의 40%)까지 받게 된다. 이마저도 85%는 매월 지급이지만 15%는 직장에 복귀한 후 6개월이 지나야 받을 수 있다. 즉 85만원은 휴직 중에 받고 15만원은 복직 6개월 후에 받는다. 아버지의 임금이 어머니 임금보다 많은 경우가 대다수인 일반 가정에서는 남성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내기 쉽지 않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여성 공무원이 많이 증가했지만 민간보다는 남성적인 문화가 많아 조직 분위기가 바뀌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직제에 따라 개인별 업무가 정해져 있는 공무원 조직의 특징상 대체인력을 구하기 힘든 점도 원인”이라고 전했다. 조직의 유연한 직무편성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여성민우회의 류형림 활동가는 “남녀에 관계없이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근로자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부의 관리감독도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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