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마(端島)’보다 ‘군함도(軍艦島)’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진 섬. 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항 근처에 위치한 축구장 2개 크기의 작은 섬이다. 19세기 후반 미쓰비시 그룹이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개발해 탄광 사업을 실시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그 섬으로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돼 노역에 시달렸다. 1974년 폐광된 후 무인도로 남아 있던 이 섬은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부초’의 작가 한수산(70·사진) 선생은 그 비극의 역사를 2권짜리 역사소설 ‘군함도’(창비)로 완성했다. 군함도 문제를 다룬 한국 첫 소설이다. 27년간 매달려온 지난한 개정 작업의 완결판이다.
첫 시도는 1993년 일간지에 연재한 장편 ‘해는 뜨고 해는 지고’이다. 3년의 연재를 ‘실패’라고 규정한 작가는 첫 장면만 남긴 채 전부 고쳐 ‘까마귀’(해냄출판사)라는 전 5권 소설로 2003년 재탄생시켰다. 당시 20만부 이상 팔렸으나 미흡하긴 마찬가지였다.
작품 제목을 ‘군함도’로 바꾸고 3분의 1가량이 축약된 분량으로 개작을 다시 시도하며 한·일 동시 출간을 기획했다. 일본에서 자체 축약·번역한 책은 2009년 일본에서 ‘군칸지마(軍艦島)’라는 이름으로 나왔으나 한국에서는 나오지 못했다. 작가에겐 숙성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마침내 2권의 농축된 책이 나온 것이다.
출발은 1989년이다.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접했던 그는 강제징용과 나가사키의 피폭이 뒤엉킨 비극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과 함께 이를 소설로 형상화하기로 결심한다. 1990년 일본으로 취재 여행을 갔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와 ‘나가사키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멤버들, 특히 직접 피해자인 서정우씨를 만나 함께 군함도 현장을 취재했다. 당시 칠순을 넘겼던 서씨와의 마지막 만남은 문학적 부채이자 지금껏 소설을 밀고 온 힘이다.
“나가사키 취재를 끝내고 서씨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돌아오던 밤이었지요. 내가 탄 전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로등 아래서 손을 흔들던 그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지요.”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그들의 삶을 문학적 기억을 통해 남겨야겠다는 의무감이 없었다면 탈고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난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말했다.
탈출 시도와 실패, 혹독한 고문,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지만 나가사키에서 결국 피폭자로 목숨을 잃고 마는 조선인들의 삶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육화시킨다.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왔다가 하청업자에 속아서 끌려온 명국, 친일 집안 출신으로 임신한 아내를 두고 형 대신 노역에 끌려 온 지상, 다혈질로 부당한 처우에 앞장서 항의하는 우석, 우석에게 연정을 느끼는 유곽 여자 금화…. 최연소 노역자 15세 소년 성식은 취재 과정에 도움을 줬던 서정우씨가 모델이다.
그는 한·일 과거사 문제를 제자리걸음인 흔들의자에 비유하며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아니라 문화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 일제강점기를 그린 소설이 몇 권이며, 영화는 몇 편이며, 노래는 몇 곡인가요?”
‘군함도’는 시작일 뿐이다. 그는 “나이 생각하지 않고 과거사에 대한 발언을 내 문학 안에서 하겠다”며 “사할린 문제, BC급 전범 문제, 피폭 2·3세 문제 등 기억의 3부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징용·피폭 뒤엉킨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라
입력 2016-05-19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