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칩거에 들어갔다. 비대위와 혁신위원장 인선에 따른 계파 갈등이 폭발한 당 상황을 수습할 방안을 찾기 위해 ‘장고(長考)’에 돌입한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 후 KTX로 귀경 도중 지역구인 충남 공주에 하차했다. 그는 한 언론에 “집권 여당에서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무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판단이 안 선다”고 말했다. 이어 “당 쇄신과 당 지도부 구성 임무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친박(친박근혜)계가 비대위 인선에 반발하는 것에 대해선 “계파 개념을 두고 인선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국민 뜻을 존중해서 가면 되는 것이지, 무슨 계파 타령이냐”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민의를 뛰어넘는 가치는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는 당분간 지역구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 인선안이 주류인 친박계에 의해 비토당하면서 정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계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일각의 평가도 있지만 “앞으로 친박계나 청와대의 뜻에 어긋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한계론을 제기하는 의견도 많다.
원군이 될 비박(비박근혜)계 역시 그의 정치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비박계 한 의원은 “정 원내대표가 자신의 구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전국위가 무산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했어야 한다”며 “혁신위원장 인선을 서둘러 친박계를 자극한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당내 일각에선 비대위 구성 전에 친박계를 먼저 설득하지 못한 점 등을 꼬집으며 ‘정무감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 원내대표의 숙고 모드를 두고 정치권에선 양 계파에 ‘당의 앞날을 위해 자중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한다. 그는 5·18기념식 후 친박계가 요구하는 비대위 인선 수정 방침이나 비박계가 요구하는 당선자 총회 개최 등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다만 “새누리당을 대표해 광주에 왔다”며 자신이 당을 대표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거취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행 KTX 열차에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조우했다. 두 사람은 바로 앞뒤 자리에 앉았음에도 단 한마디의 인사말도 나누지 않았고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광주에 도착하는 약 2시간 반 동안 둘은 눈 한번 맞추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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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정진석 ‘칩거모드’… 친박 비토로 리더십에 상처
입력 2016-05-19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