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가면 곳곳에서 불쑥 솟아오른 오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이 오름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제주도 전설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싼 똥이 쌓이고 또 쌓이고 그것들이 말라 굳으면서 오름들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름이 360여개나 된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 전설의 중심적 인물이다. 제주 신화에서 이 세상을 창조한 이로 묘사되는 천지왕의 늦둥이 딸이다. 천상 생활이 너무 무료했던 설문대할망이 이승으로 뛰어내려 앉은 곳이 바로 한라산이었다. 거인에 식성이 좋고 똥도 많이 싸는 설문대할망은 잠을 잘 때는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웠는데 그러면 발끝이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닿았다. 하루는 왼쪽 발을 잘못 뻗어 우도에 구멍 두 개를 내게 되었는데 그게 고래동굴이다.
전설, 신화, 민담 등은 역사 이전 또는 과학 이전의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로 그들이 세상과 삶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보여준다. 그 속에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퇴색되지 않을 ‘오래된 지혜’, 그리고 매혹적이고 우주적인 상상력이 들어있다. 제주도는 ‘신들의 고향’ ‘설화의 보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옛 이야기들이 풍부한 곳이다. 제주 출신의 소설가 이석범(사진)씨가 지난 10여년간 제주도에 흩어져 있는 전설과 신화, 민담을 채집해 8권의 문고본에 담았다. ‘이석범의 탐라유사 8부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문고본 시리즈는 제주 전설 5권, 제주 신화 2권, 제주 민담 1권으로 구성됐다.
책은 제주도 옛 이야기들의 총망라나 집성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석범씨는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탐라국’의 계보를 ‘천지왕→설문대할망→삼신인’으로 연결하여 서사의 맥을 하나로 이었다는 사실일 것”이라며 “그간 상호 무관하거나 모순 관계에 있던 신화의 천지왕, 전설의 설문대할망, 역사의 고·양·부 삼성씨를 한 줄로 연결한 이 계보는 신화와 전설 등을 통괄하여 ‘탐라의 대서사’를 여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민담’으로 통칭됐던 이야기들 가운데 ‘제주민담’을 처음으로 구분해내고 장르화한 첫 시도이기도 하다. 책에 실린 28편의 민담 중 저자가 가장 제주적이라고 꼽는 것은 ‘오돌또기’다.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둥그대 당실 둥그대 당실/ 너도 당실 원자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노래의 첫 마디 가사를 따서 ‘오돌또기’라고도 하고 후렴구인 ‘둥그대 당실’을 곡명으로 쓰기도 하는 이 민요에는 배를 타고 육지로 향하다가 종종 풍랑을 만나 낯선 나라로 표류해야 했던 제주민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설문대할망… 오돌또기… 탐라에 얽힌 이야기 집대성
입력 2016-05-19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