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지난해 김제 심창초교 입학한 할머니 6명… 그 후 1년

입력 2016-05-19 17:53 수정 2016-05-19 21:41
전북 김제 심창초등학교에 늦깎이로 입학해 배움의 갈증을 풀고 있는 1, 2학년 할머니 학생들이 17일 2학년 교실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할머니들은 취재를 온다고 해서 염색을 하고 예쁜 옷도 입고 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해 3월 화제를 모은 시골 초등학교 '늦깎이 신입생'들을 아시나요? 전북 김제 심창초등학교 6명의 할머니 학생들 말입니다. 박금옥(67) 할머니 등 55∼67세였던 이들은 손주 같은 어린 학생 2명과 함께 수업을 받게 돼 신문·방송을 통해 알려졌지요. 그 후 1년, 2학년에 올랐을 이들의 지난 15개월이 궁금했습니다. 이 학교 장인선 교감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취재 요청을 했습니다. 지난해 언론에 시달렸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미리 양해를 구했습니다. 할머니들이 "오케이"라고 흔쾌히 답을 줬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17일 만경평야를 달려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지난해보다 더욱 밝아진, 후배들까지 챙기는, 예쁜 '할매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심창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 들어섰을 때 할머니들은 담임 조성화(38·여) 교사로부터 수학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34+57=?’ ‘192-27=?’ 등의 문제를 노트에 얼굴을 묻고 풀던 학생들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맞아 주었습니다.

“신문사에서 온다고 해서 염색을 다시 했어요. 옷도 깨끗한 것으로 입고….” 교실에 금세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재밌어요. 진짜로 재밌어요.” 권금순(63) 할머니는 “집안 손주들을 만날 때면 나만 얘기해요. 맨 학교 얘기죠”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인근 마을에 사는 할매들은 지난해 초 최명호(61·여) 교장과 마을 이장들 덕분에 정식으로 학교에 들어왔습니다. 30여년 전엔 학부모로서 자녀들의 손을 잡고 왔었는데…. 이들의 동기생은 쌍둥이인 홍정승·정호(8)군뿐이었습니다.

입학 후 이들은 한글과 셈을 배우고 색칠놀이와 동요 부르기도 했습니다.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1주일에 한 번은 읍내에 나가 수영을 배우고 있습니다.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쑥스럽지만 이들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가난 때문, 여자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학교에 온 뒤 사계절이 바뀌고 다시 교정에 예쁜 꽃들이 피었습니다.

할매들은 이제 손주들이 보내온 편지도 스스로 읽고, 간판이랑 버스 노선표도 단박에 알아봅니다. 하지만 받아쓰기는 아직도 어렵고 수학은 더 어렵습니다.

“보태기 빼기, 아이고 사람 죽겠네.” 서공순(62) 할머니의 푸념에 조 교사는 “수학문제가 이야기와 연관돼 나오니 어려워하신다”고 귀띔합니다. 누군가 “(우리가) 유치원만 다녔으면(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이라고 말하자 웃음이 빵 터집니다.

지난해 4월에는 전교생이 서울로 테마식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임금선(66) 할머니는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상태인데도 버스에 앞장서 올랐습니다. “한 번도 안 가본 수학여행인데, 빠질 수 없었다”는 게 임 할머니가 내놓은 답변입니다.

선생님들은 나이 많은 제자들을 ‘○○○님’이라고 부릅니다. 할매들은 몇 십년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거의 없었다며 몹시 기뻐했다고 합니다.

“휴일이 싫어요, 방학은 더 싫고요”

할매들은 학교생활이 재미있는데, 토·일요일엔 쉬니 아쉽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학교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 너무 좋아 ‘외국여행을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면학 분위기를 깨면 어쩌지”라던 학교 측의 당초 우려는 금세 사라졌다고 합니다. 다른 학부모들의 반응 또한 ‘굿’입니다.

“할머니들의 학습 태도가 대단해요. 매사 적극적이고 어린 학생들을 잘 챙겨주시죠.”

조 교사는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일깨워 주고, 청소할 때는 시범도 보여주신다”며 “친할머니처럼 사랑으로 감싸준다”고 고마움을 전합니다.

할매들은 결석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1명의 여학생이 전학을 와 2학년은 모두 9명으로 늘었답니다.

각계의 관심과 지원도 잇따랐습니다. 김효순 김제교육장은 지난해 이들 ‘만학도’들을 초청해 짜장면과 탕수육을 대접하고 교육청도 구경시켜 줬습니다. 올해는 다목적실을 개보수해주기로 했답니다.

학교 측은 할매들의 불편한 다리를 생각해 2층에 있던 2학년 교실을 1층에 만들어 줬습니다. 조 교사는 자원해서 올해도 할머니들의 담임이 되었습니다.

최 교장은 지난 2월 졸업식 때 할머니들에게 1학년 수료증을 주었습니다. 그는 “학교 분위기가 훨씬 좋아지고 할머니들의 얼굴도 더욱 밝아졌다”며 “무엇보다도 할머니들이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고 계시는 게 눈에 보인다”고 말합니다.

소문이 나자 또래 신입생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3월 올해 칠순을 맞은 소정순씨 등 3명의 할머니가 1학년(어린이는 5명)으로 입학을 했답니다. 후배들이 생긴 거지요. 1학년 정옥(59) 할머니는 “며느리가 ‘잘했다’고 응원하고, 막내딸이 필기구를 사줬다”고 자랑했습니다. 학교에선 2학년들에게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른답니다.

현재 이 학교의 학생은 모두 38명. 4명 가운데 1명이 할머니 학생입니다.

“열심히 공부해 꼭 졸업장을 받겠습니다”

할매들은 자신감이 넘칩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조심스러워합니다. 열정은 대단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학업 성취는 물론, 건강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한 할머니는 사정이 생겨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사 일정은 ‘아이들’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행여 ‘혼합반’으로 인해 어린 학생들의 학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하고 있답니다.

5년 뒤인 2021년 2월,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름이 적힌 멋진 졸업장을 받고 다시 기념촬영 하시기를 응원해 봅니다.

김제=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