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친다. 일부 의료쇼핑과 과잉진료로 인해 치솟는 보험료 문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관계 부처들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실손보험 통계 인프라부터 구축한다. 자기부담금 인상 여부 등 민감한 사항도 포함한 대책을 하반기까지 내놓기로 했다. 18일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등 9개 정부부처와 연구기관은 실손보험 개선을 위한 정책협의회를 열고 TF 구성에 합의했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실손보험 재정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각 부처의 차관급 인사가 참여하는 실손보험 정책회의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 기능 붕괴된 실손보험=가입자가 3200만명에 이르는 실손보험은 일부 가입자와 의료기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손해율이 증가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 급여 부문의 본인부담금 및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한다. 치료가 급하지 않은 고가 비급여 진료도 지원해주다보니 과잉진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회당 15만원 정도인 도수치료(맨손으로 하는 통증치료)를 패키지 10회로 묶어 체형교정·미용 목적으로 진료해주고 치료용이라는 진단서를 떼어줘 보험금을 받아내는 식이다. 비급여 보험금은 2010년 800억원에서 2014년 1조5000억여원으로 치솟았다.
이런 부당한 보험금 지출은 나머지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메워진다. 실손보험 가입자 5명 중 4명은 아직 보험금을 한 번도 수령한 적이 없는데도 손해율이 늘면서 올 들어 보험료가 평균 20% 올랐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행 시스템에서는 어떤 가격으로 비급여 진료를 제공할지 의료기관이 정하고 고객들도 돈을 보험사가 내니 가격이 비싼지 알아볼 필요가 없다”며 “시장 기능이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드 표준화부터 추진=TF는 우선 실손보험 통계부터 작성하기로 했다. 진료비 코드 표준화가 첫 단추다. 현재는 각 병원이 사용하는 진료비 코드가 통일돼 있지 않아 어디서 보험금이 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없다. 올해 안에 28개 대형병원 등을 중심으로 순차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심사가 느슨한 비급여 부문 관리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진다. 실손보험 심사를 국민건강보험을 심사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법제화가 필요한 부분이고, 의료계의 반발도 거세다.
10%에서 20%로 오른 비급여 부문 자기부담금이 더 오를지도 주목된다. 금융 당국은 자기부담금 20%가 모럴 해저드 제어 장치로는 약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보장 범위 손질도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올 초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하며 하지정맥류 레이저 시술을 보장 대상에서 제외했었다. 고가의 비급여 진료 항목을 손보겠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과거의 수술법인 절개수술만 하라는 거냐”며 반발이 거셌다.
TF 논의 과정에서 금융 당국과 의료계의 갈등이 다시 첨예하게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의료계는 진료비 코드 표준화의 경우 병원 관리 업무가 가중되는 등 의료업무 집중이 어려워진다는 입장이다. 보장 범위 축소에 대해서도 결국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으로 이어질 거란 반발이 의료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TF 관계자는 “의료계와 의견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칠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한 계단씩 밟아나가겠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3200만명 가입 실손보험 뜯어고친다
입력 2016-05-18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