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종합순위 16위, 미국 종합순위 42위. 18일 오후 2시 현재 두 나라 아마존닷컴에서 확인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실시간 판매순위다. 영미권 독서시장에서 확고히 자리매김한 저명한 작가가 아니고는 낼 수 없는 기록이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책들 중 상당수가 실용서와 어린이책인 것을 감안하면 일반문학 순위에선 거의 한 손 안에, 혹은 두 손 안에 꼽히는 순위다.
한국 시각으로 18일 새벽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출간한 영국과 미국 출판사 관계자로부터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영국에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이 발표되던 날 저녁 ‘채식주의자’가 2000부 팔렸으며 부랴부랴 2만부 추가 인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미국에서도 역시 그날 저녁에만 300부가 빠지면서 7500부 추가 인쇄를 주문했다고 한다. 두 나라 출판 관계자들 모두 놀라워하며 크게 고무된 표정이었다. 이런 판매 추세가 당분간 이어진다면 영국을 넘어 미국에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맨부커가 문학상을 제정해 수여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한 해 동안 영국에서 번역·출간된 해외 문학작품 중 훌륭한 작품을 선정해 그 작가와 역자에게 상을 수여함으로써 예술적 성과를 기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선정된 우수 문학작품을 세계 독자들에게 널리 알림으로써 시민들의 독서 함양은 물론 출판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하기 위함이다.
수상 이후 ‘채식주의자’에 대한 세계 독서시장의 뜨거운 반응은 맨부커상의 목적에 제대로 부합한다. 영국과 미국 서점가에서 꽤나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오고 있다. 또 이 책의 판권이 이미 팔린 25개 나라 이외의 언어권에서 판권 확보를 위한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일본 등을 비롯해 기존에 이 작품이 출간된 나라에서도 수상을 계기로 다시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국 서점가의 반응은 더 뜨겁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날 책이 품절되는 행복한 긴급 사태를 맞고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않고서는 국내는 물론 세계의 수많은 독자에게 다가간다는 게 쉽지 않다. 해외의 주요 평단이나 언론매체로의 접근에도 한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문학작품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둬야 하는 한 가지 이유가 여기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처음 해외로 소개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영국에서 출간돼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기까지 9년이 걸렸다. 2007년 막 출간된 ‘채식주의자’를 보고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앞에서 작가를 만나 이 작품을 들고 세계시장으로 진출시켜보겠다고 얘기하던 기억이 난다. 문학 작품이 글로벌 무대에서 성과를 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른 예술작품에 비해 훨씬 길다는 것이 이번에 입증된 셈이다. 세계시장에 한국 소설을 판다는 것은 나무를 심고 열매가 맺혀 잘 영글기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농부의 일과 같다. 한강의 수상을 통해 긴 호흡으로 관심을 갖고 꾸준히 지원할 때 최고 좋은 과실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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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독서시장 ‘채식주의자’ 열풍… 상업적으로도 성공”
입력 2016-05-18 18:36 수정 2016-05-18 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