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보건 전문가들은 국민 3분의 1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으며, 30여만명이 가습기 살균제 독성 물질에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30만명은 현재 정부가 인정한 공식 피해자 수 221명의 1357배에 달하는 수치다. 몇 차례 진행됐던 정부의 조사 판정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폐 이외’ 질환과 가습기 살균제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고 조사·판정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조사·판정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제2차 환경독성포럼’에서 폐 이외 질환 피해나 태아 피해 등을 확인하기 위해 기존 판정 절차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독성 성분이 폐 외에도 동맥경화, 면역억제, 만성호흡기질환, 비만, 지방간, 비염 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고기인 ‘제브라 피시’에 가습기 살균제 주요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독성 실험을 했더니 70분 내 사망했다는 결과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그는 “1차 조사는 일부 폐 손상 피해자가 누락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2차 조사는 폐 이외 질환자 등을 꼼꼼히 진단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영상자료나 임상자료가 부족한 데다 이미 사망한 경우 가습기 살균제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3년 7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주도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조사·판정을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 기간·강도·위치 등을 따지는 환경노출과 질병 경과·증상에 대한 임상전문가 진단, X선·CT 등 영상판정, 조직병리 검사 등 4개 분야별 판정과 종합판정을 거쳐 피해 여부가 가려진다. 거의 확실, 가능성 높음, 가능성 낮음, 가능성 거의 없음 등 4단계로 결정되고 자료가 부족하거나 조사에 임하지 않으면 판정 불가를 받을 수 있다.
홍 교수는 “환경노출 조사 결과만으로도 피해를 인정하거나 최종 판정에서 의견이 갈릴 경우 더 높은 등급으로 판정하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752명을 3차 신청자로 받아 조사·판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시작된 4차 신청에는 현재까지 200명 이상이 접수했다. 3, 4차에 대한 조사·판정을 내년 말까지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환경부는 조사·판정 작업을 보강하기 위해 ‘폐 이외 질환 검토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태아 피해, 생식독성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다른 질병에 대한 판정 기준이 마련되면 3, 4차는 물론 1, 2차 신청자에게도 소급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조사·판정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르면 다음 주 검사 병원을 추가 지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송기호 국제통상위원장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세퓨’ 성분인 PGH 위험성을 9년 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송 위원장은 “당시 노동부가 2007년 7월 12일 화학물질의 명칭 유해성 취급기준 고시에서 PGH에 대해 ‘증기 노출 작업 시 호흡용 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하도록 할 것’이라고 고시했다. 국가 책임의 직접적 증거가 밝혀졌다”고 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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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폐 외에 동맥경화·비염 등에도 영향”
입력 2016-05-18 18:10 수정 2016-05-18 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