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안봐”… 친박, 막가는 패권몰이

입력 2016-05-19 04:02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8일 지역구인 충남 공주의 사무실에서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광주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귀경 도중 공주에서 하차했다. 뉴시스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겠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갈 수 없다.”

새누리당 최대 계파인 친박(친박근혜)계가 쏟아내는 말이 거침없다. 분당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확인된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비박(비박근혜)계의 지도부 진입을 막아낸 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1차 목표는 명확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를 수 있는 여당 내 대오이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차 목표는 당권이다. 전당대회를 통한 합법적인 당권 장악 수순에 돌입한다는 방침 아래 ‘오더’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친박계는 전날 전국위원회를 보이콧한 이유로 정진석 원내대표의 잘못된 비대위 인선을 꼽았다. 재선 이장우 의원은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같은 여당인데 정부를 흔들어대는 발언을 계속 해대며 당내에 총질을 하는 인사들이 앞장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지목한 유승민 의원 복당 문제가 보이콧에 나선 계기가 됐다는 점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당내에 유승민 (의원이) 빨리 입당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고 반문한 뒤 “(비대위원들은) 첫 회의부터 ‘유승민 빨리 복당하라’ 이런 얘기를 서슴없이 했다”고 지적했다.

4·13총선 참패의 책임이 박 대통령과 친박이 아닌 비박, 특히 ‘옥새파동’을 일으킨 김무성 전 대표에게 있다는 논리도 폈다. 이 의원은 “(선거 패배는) 당의 최고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당대표 밑에 있던 사무총장이나 최측근이 지도부를 다시 맡는 것이야말로 가장 잘못된 인선”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친박계 재선 김태흠 의원은 “정당이라는 건 이념과 목표가 같은 사람끼리 해야 하는 것”이라며 “당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분당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다”며 국정운영 기조를 비판하는 비박계 의원들을 겨냥해 아예 ‘탈당’을 권유했다. 정 원내대표를 향해서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인선을)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든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친박계의 강경 기조는 ‘정면 돌파’만이 해법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선거 패배 책임을 놓고 자중지란(自中之亂) 끝에 당이 쪼개졌던 과거 집권여당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여론 눈치에 모호하게 타협해도 ‘연판장 사태’ ‘잦은 지도부 교체’ 등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외형적인 당세 위축을 감수하고라도 오직 대통령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세가 약화되고 구심점이 사라진 비박계가 집단탈당 등 단체행동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친박계가 강경 기조로 선회한 배경으로 꼽고 있다. 친박계 한 인사는 “총선 직후만 해도 중립이나 비박계 인사에게 당권을 주고 물러서 있겠다던 핵심 인사들도 이제는 청와대의 신호를 기다리며 조용히 출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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