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진 나눔’… 사랑의 앵글로 이웃을 담다

입력 2016-05-18 19:37
서울 마포구 ‘바라봄 사진관’에서 나종민 대표가 카메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전호광 인턴기자, 바라봄 사진관 제공
2013년 2월 바라봄 사진관에서 장애인 가족과 함께한 모습. 전호광 인턴기자, 바라봄 사진관 제공
지난해 12월 필리핀 리파 지역 SOS 마을에서 나 대표가 선물한 액자를 들고 주민들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전호광 인턴기자, 바라봄 사진관 제공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획일화된 사회 속에서 잃어가는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작곡가 유영석의 노래 ‘네모의 꿈’에 나오는 가사다. 가사는 온통 네모난 것들뿐이라고 한탄하고 있지만 네모난 카메라 뷰 파인더를 통해 희망을 보고 사람과 사람을 둥글게 이어주는 사람이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바라봄 사진관(대표 나종민)에서 만난 나종민(52) 대표는 “사진이야말로 이 시대에 딱 어울리는 나눔의 도구”라고 말했다. 바라봄은 비영리를 추구하는 장애인 전문 사진관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나 대표는 IT업계에서 20여년간 종사하며 내로라하는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사장까지 지냈다. 억대 연봉자로 소위 잘나가던 그는 2007년, 나이 마흔 셋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퇴사를 결심했다. 영리조직이 추구하는 실적주의와 성취감 없는 삶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나 대표는 퇴사 후 평소 관심 분야였던 사진을 배우며 은퇴 후 행복설계 강좌를 들으며 180도 다른 새로운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촬영 재능기부를 위해 찾았던 장애인 체육대회장에서 나눈 한 뇌병변 장애인의 어머니와의 대화는 밑그림만 그려오던 목표에 불을 댕겼다. “아이와 가족사진을 찍고 싶은데 동네 사진관에서는 왠지 위축이 돼서 찍을 엄두가 안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2009년 ‘마음을 바라보는 창’이라는 의미를 담은 ‘봄(VOM·Viewfinder of mind)’과 ‘바라보다’를 결합한 이름으로 ‘바라봄 사진관’을 개업했다. 장애인을 위한 사진관이었다. 그렇다고 보통 사진관과 다른 것은 없다. 하지만 뷰파인더를 통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나 대표의 마음가짐은 특별하다.

“비장애인의 경우 10분이면 끝날 촬영이 장애인은 2시간 걸리기도 하죠. 장애인 열에 아홉은 태어나 처음 사진을 찍어보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사진을 찍기 전에 차도 마시고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제가 그분들의 가족이 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바라봄을 찾는 손님들은 한 번의 촬영비로 두 번 사진을 찍는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1 행사’의 사진관 버전이다. 차이점은 무료촬영 기회가 자신이 아닌 장애인, 어르신, 미혼모 등 소외된 이웃들에게 주어진다는 것. 촬영된 사진은 기부자에게도 전달돼 자신이 나누어 준 기회가 누구에게 선물이 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월부터는 무료촬영에 나눔을 더해 종합선물세트를 만들었다. 촬영하러 오는 가족들이 촬영 전 전문가에게 머리 손질과 화장을 받고, 촬영 후에는 카페에서 식사하며 오래도록 그날을 추억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 헤어숍인 ‘오테르 살롱’, 카페 ‘슬로비’, 사진관 ‘바라봄’이 함께한다고 해서 ‘오로라 프로젝트’라고 이름 지었다. 지난 1월부터는 환경개선 전문회사가 동참해 가족사진을 찍는 동안 집도 청소해준다. 덕분에 프로젝트 이름도 ‘오로라 플러스’로 바뀌었다.

나 대표는 “나눔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로 이어지는 오묘한 속성이 있다”며 “나눔이 한 사람, 한 분야에 멈추지 않고 더 넓은 바다로 흘러갈 때 우리 사회가 ‘나눔 공동체’가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바라봄은 한 달에 한 번 ‘사진 유랑’을 떠난다. 전국 방방곡곡 사진촬영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간다. 지난해엔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2000만원을 모금해 장애인 800여명에게 가족사진, 영정사진, 프로필사진을 액자에 담아 선물했다.

이달에는 해외 가족사진 봉사를 위해 ‘네모 프로젝트-네모에 마음담자’도 진행 중이다. 기부자가 1구좌(1만원)를 후원하면 가족사진을 선물할 때, 액자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겨준다. 카메라의 뷰파인더,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 사진이 담긴 액자, 후원금인 만원짜리 지폐 등 기부자와 수혜자를 이어주는 ‘네모’에 사랑을 담아내는 것이다.

나 대표의 소망은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것을 나누고 희망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창조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진화해내는 것. 과거 영리조직에 있을 때나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는 지금이나 추구하는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의 값어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요. 나눔의 진화가 제2, 제3의 ‘바라봄’을 키워내길 바랍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