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백 킹캉’… 태극기 흔들고 울먹인 피츠버그 시민들

입력 2016-05-18 19:30 수정 2016-05-18 22:11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여성 팬이 1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홈구장 PNC파크에서 강정호의 복귀 환영인사를 적은 팻말을 들고 울고 있다. 중계방송 캡처
한글로 '해적'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태극기를 흔드는 피츠버그의 여성 팬. 중계방송 캡처
1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NC파크.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1회말 1사 2, 3루 득점 기회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다음 타자를 호명하자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넘버 27, 정호∼ 강!(등번호 27번 강정호)”

4번 타자로 출전한 강정호(29·사진)였다. 피츠버그 시민들은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모두 일어섰다. 그리곤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며 그를 맞았다. 관중석 곳곳엔 강정호 이름을 한글로 새긴 피츠버그 유니폼, 온갖 응원문구와 환영인사를 적은 팻말이 걸려 있었다.

두 백인 남성은 해적으로 변장한 채 외야 꼭대기로 올라가 졸리 로저(Jolly Roger·해적의 해골 문양) 깃발을 태극기와 함께 흔들었다. ‘강정호 환영해요. 피츠버그는 당신을 사랑해요(Welcome Back Jung Ho, Pittsburgh Love You)’라고 적은 팻말을 높이 들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백인 여성도 보였다.

모두 강정호를 향한 환영인사였다. 강정호가 이 경기장의 타석을 다시 밟을 때까지 피츠버그 시민들은 8개월, 정확히 244일을 기다렸다. 이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메이저리그 홈경기는 강정호의 PNC파크 복귀전이었다.

강정호는 지난해 9월 18일 이 경기장에서 쓰러졌다. 2루 수비 과정에서 발을 높게 들고 베이스태그를 시도한 시카고 컵스 1루 주자 크리스 코글란(31·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게 걸려 넘어져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됐고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은 그렇게 끝났다.

피츠버그 팬들은 그라운드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는 강정호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421타수 121안타(15홈런) 타율 0.287을 기록한 중심타자의 부상. 팬들이 관중석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코글란에게 퍼붓는 야유와 욕설뿐이었다.

강정호와 피츠버그 팬들은 포스트시즌 출정식이 열린 그 다음달 8일 PNC파크에서 재회했다. 하지만 타석이 아닌 휠체어에 앉은 강정호였다. 관중들은 그때도 강정호에게 뜨거운 함성과 기립박수로 힘을 불어넣었다. 강정호는 모처럼 밟은 안방 타석에서 5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복귀 8경기 만에 4개의 홈런을 몰아친 타격감에는 못 미치는 활약이었지만 첫 타석에서 선취점을 뽑아 피츠버그의 포문을 열었다.

강정호는 애틀랜타 선발투수 애런 블레어의 3구째를 타격하고 3루수 야수선택으로 출루했다. 이 과정에서 애틀랜타 포수 A J 피어진스키는 피츠버그 3루 주자 존 제이소와의 홈 승부에서 공을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다. 강정호는 그렇게 안타 없이 타점을 얻었다. 1회말에만 7점을 뽑은 피츠버그 타격 쇼의 시작이었다.

피츠버그는 장단 21안타를 몰아치고 15안타를 얻어맞은 난타전 끝에 애틀랜타를 12대 9로 제압했다. 피츠버그 선발투수 후안 니카시오는 5이닝 동안 8피안타(1피홈런) 1볼넷 5실점(3자책점)으로 부진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아 승리투수가 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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