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한국 발레를 세계에 알린다는 책임감을 다시 한 번 다지겠습니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24·사진)이 17일(한국시간) 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 남자 무용수상을 수상했다.
‘춤의 영예’라는 뜻의 브누아 드 라 당스는 발레의 개혁자로 불리는 장 조르주 노베르(1727∼1810)를 기리기 위해 1991년 제정된 상으로 ‘무용계의 아카데미’로 불린다. 세계적인 발레 스타들이 받은 상으로 한국 출신으로는 1999년 강수진, 2006년 김주원이 수상한 적이 있지만 발레리노로는 김기민이 처음이다. 앞서 2006년 김현웅과 2012년 이동훈이 최고 남자 무용수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현재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김기민은 18일 국민일보와의 단독 전화 인터뷰에서 “너무 쟁쟁한 후보들이 많아서 수상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상식 인사말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짧게 끝냈다”면서 “그동안 무용수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여러 선생님들에게 특히 감사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큰 상을 받긴 했지만 솔직히 내겐 상보다 관객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마린스키 발레단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 다음 공연 연습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춤을 추며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다는 어린 시절 꿈을 이뤘지만 최근 바쁜 나머지 힘들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초심을 잃은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마음가짐을 다져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기민은 지난 4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자 무용수상 후보 명단에 파리오페라발레의 조슈아 호폴트 등 세계적인 무용수 5명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파리오페발레에 객원무용수로 초청돼 공연한 누레예프 버전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역과 마린스키 발레단의 포킨 안무 ‘셰헤라자데’의 황금노예 역으로 노미네이트됐다.
특히 인도를 배경으로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역으로는 경쟁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는 “두 작품의 음악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역할에 몰두하기 쉬웠다. 동양적인 작품들이라 내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고 자평했다. 그는 브누아 라 당스 갈라 공연에서는 ‘셰헤라자데’의 황금노예의 춤을 선보였다.
어릴 때부터 ‘발레 신동’으로 불린 김기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2009년 모스크바콩쿠르 주니어 부문 금상 없는 은상, 2012년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콩쿠르 대상 등 여러 국제대회를 석권했다. 2011년 아시아 발레리노로는 처음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지난해 4월 4년여 만에 수석무용수로 초고속 승급하며 한국 발레 역사를 새로 썼다.
그는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니 한국 발레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이 들어 더 열심히 춤추게 된다. 내가 후배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머지않은 시기에 한국 관객들에게 내 춤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발레리노 김기민 “한국 발레 대표한다는 마음… 책임감 가질 것”
입력 2016-05-18 19:21 수정 2016-05-18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