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해서 미치겠어요.”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남자주인공 박도경(에릭)이 여자주인공 오해영(서현진)을 놓고 하는 말이다. 이 달콤한 대사와는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요즘 드라마에는 ‘짠한’ 이들이 종종 등장한다. 취업에 허덕이고, 꿈을 이루지 못해 밀려나고, 잘나지 못해 타박 받는 20∼30대들. 그럼에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현실 속 20∼30대와 닮은 인물들이다.
SBS 드라마 ‘미녀 공심이’는 짠한 20대 취업준비생 공심(민아)이 등장한다. 공심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언제나 ‘을’이다. 외모부터 머리까지 다 물려받은 변호사 언니 공미(서효림)에 밀린 공심은 집안 허드렛일부터 엄마의 구박까지 다 감내해야 한다.
집 밖에서도 영 시원찮다. 취업을 위해 끊임없이 서류를 넣지만 언제나 빛의 속도로 떨어지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얻어맞기도 한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다는 말에 “주유소에 잘생긴 이태리 남자라도 오니?”하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건 “내가 참으면 되지”라는 생활신조 덕이다.
비서 면접을 보다가는 “저 얼굴로 비서 하겠다고 온 거면 제정신이 아닌거지”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다만 여기에선 환한 웃음으로 참는 대신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그러니까 개저씨 소리 듣는 겁니다. 말문 막히면 욕하고 손 치켜드는 게 바로 개저씨입니다.”
보잘 것 없지만 착하고 씩씩한 여주인공은 사실 전형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식상하지 않은 것은 공심이 겪는 일들 때문이다. 드라마는 요즘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취업준비생의 설움, 알바생의 고달픔을 깨알같이 다루면서 공감을 얻고 있다.
외모가 경쟁력인 사회에서 외모 때문에 손해를 보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또 있다. ‘또! 오해영’에서 흙수저 오해영(서현진)은 고등학교 동창인 금수저 오해영(전혜빈)과 늘 비교를 당하며 살았다. 예쁘고 똑똑하고 상냥하고 잘난 오해영 때문에 흙수저 오해영은 때론 웃음거리가 되고, 때론 많은 이들을 본의 아니게 실망시킨다.
흙수저 오해영은 회식 자리에서 금수저 오해영만 떠받드는 회사 동료들을 향해 “나는 나라고!”라고 외쳤다가 상사에게 혼난다. 짠하지만 한편으론 속시원한 한방이었다. “나는 나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삭이는 수많은 20∼30대 평범한 오해영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SBS 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에도 짠한 20대가 나온다. 몇 년째 TV에 얼굴조차 못 비치는 실패한 연예인 나영(남규리)과 세계 여행을 하기 위해 취업을 포기한 세준(정해인)이다. 나영은 엄마가 운영하는 카페 알바와 모델 알바를 전전하고, 세준은 세계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치킨배달, 대리운전 등 닥치는 대로 알바를 뛴다.
두 사람 모두 극 중에선 안쓰러운 루저로 취급받는다. 세준은 머리가 나빠 취업을 포기한 것 아니냐며 한심한 녀석 소리를 들어야 했고, 나영은 연예인이 자신의 갈 길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 하고 있다. 창업도 꿈꿔보지만 “철없다”는 타박만 듣고 접어야 했다. 두 사람의 연애를 가로 막는 것은 ‘사돈 사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불안정한 자신들의 처지도 한 몫을 한다. N포 세대의 세태가 반영된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드라마에는 현실 문제가 빠져버리면 오히려 힘이 빠지는 느낌을 준다. 특히 20∼30대가 당면한 문제들을 실감나게 다루면 공감대가 높아지고 관심이 모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흙수저가 어때서” 짠한 외침 왠지 후련하네!
입력 2016-05-18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