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대위·혁신위 무산시킨 친박, 너무 막간다

입력 2016-05-17 19:40 수정 2016-05-17 21:30
새누리당이 또다시 막장드라마를 연출했다. 다수파인 친박계는 17일 잇따라 열릴 예정이던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에 조직적으로 불참해 비상대책위원회체제로의 전환과 혁신위원회 출범을 무산시켰다. 의결정족수 미달로 회의가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날 친박계 의원 20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비박계가 비대위의 다수를 차지하고, 혁신위원장에 역시 비박인 김용태 의원을 기용된 것을 ‘쿠데타’로 규정한데 이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총선 참패 후 반성하고 쇄신하겠다던 여당의 약속과 친박의 다짐은 대국민 기만극이었던 셈이다.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책임이 친박에 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자중하고 또 자중해야 할 친박이 정진석 비대위체제로 새롭게 출범하려는 당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를 뿌리는 것은 엄연한 해당 행위이자 총선 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민주적 폭거다. 아예 처음부터 총선 민의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안하무인일 수 없다. “동네 양아치도 이렇게 안 한다”는 정두언 의원의 지적이 적확하다.

친박의 행태는 당이야 망하든 말든 비박에게 당권을 줄 수 없다는 탐욕이 빚은 결과물이다. ‘사심공천’으로 지난 총선에서 그렇게 혼나고도 여전히 이들의 오만함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반성하지 않는 자에게 변화를 기대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친박의 ‘철면피질’이 청와대의 뜻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거면 새누리당의 미래는 물론 내년 대선의 희망도 없다.

회의 무산으로 비대위가 출범하지 못하고 김 혁신위원장마저 사퇴함으로써 새누리당은 당무를 논의할 기구도, 쇄신을 주도할 기구도 없는 뇌사상태에 빠졌다. 여당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혼돈의 연속이다. 헌정사상 이런 여당을 본 적이 없다. 지금은 친박·비박이 똘똘 뭉쳐도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힘든 비상국면이다. 그런데도 친박의 관심은 오로지 당권에만 쏠려 있다. 이들에게 “욕심을 버려라”는 여론의 질책은 마이동풍일 뿐이다. 당에서 이들의 못된 버릇을 제어 못하면 대통령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친박은 당 쇄신에 딴죽을 거느니 딴살림을 차리는 게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