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그린 사람에게 저작권… 조영남 사기죄 적용 가능”

입력 2016-05-17 18:50 수정 2016-05-17 18:58
화투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 주목받은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씨가 ‘대작(代作) 논란’에 휘말렸다. 이번 논란에 대해 조씨는 “작품에서 조수의 기술이 들어간 사실은 맞지만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춘천지검 속초지청(지청장 김양수)은 조씨에게 사기죄 혐의를 적용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조씨에 대한 소환 계획은 당분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17일 “조씨가 아이디어를 제공했지만 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조씨가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판매했기 때문에 사기죄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 16일 조씨의 소속사와 갤러리 등 3곳을 압수수색했다.

이번 수사는 강원도 속초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 송모(60)씨의 제보로 시작됐다. 송씨는 지난달 “2009년부터 자신이 대신해서 작품당 10만원씩 받고 올 3월까지 3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는 내용을 검찰에 제보한 뒤 수사를 정식 요청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조씨의 작품을 대신 그렸던 작가가 화가의 양심 때문에 제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송씨가 돈을 받고 그림을 대작했는지와 대작의 양, 판매 액수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조씨는 송씨가 조수 중 한 명이라는 입장이다. 자신이 원작을 그린 뒤 사진을 찍어 보내면 송씨가 똑같이 그려서 보내주고 조씨가 마무리 손질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의뢰인이 콘셉트를 정했더라도 다른 작가가 그린 작품을 판매했다면 사기죄가 성립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사건에 앞서 미국 재판부의 관련 판례를 검토했기 때문에 사기 혐의를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검찰이 검토한 것은 1992년 미국의 판례다. ‘아메리칸 고딕’이라는 원작을 풍자한 작품을 놓고 작품 의뢰인과 실제 그림을 그린 사람 중 누구에게 저작권이 있는지를 다툰 재판이다. 의뢰인은 원작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의 얼굴을 해골로 그릴 것을 작가에게 제안했고, 작가는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재판부는 저작권이 실제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작가의 개성, 실력에 따라 그림이 바뀌기 때문에 아이디어 제공자가 아닌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판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같은 판례에 비추어보면 자신이 아이디어를 제공해 작품을 판매한 조씨에게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씨의 지인 오모(61)씨는 “2012년부터 송씨가 조씨의 의뢰를 받아 작품을 그리는 것을 지켜봤다”며 “송씨는 조씨의 제안을 받아 그린 자신의 작품을 또다시 베껴 그리는 등 인간 복사기나 다름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생계가 막막했기 때문에 조씨로부터 작품당 10만원씩 받고 대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속초=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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