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아니라 ‘제품’ 찍어내 듯… ‘조수 代作’ 파문

입력 2016-05-17 18:49 수정 2016-05-17 21:42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이 2013년 개인전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자택 작업실에서 붓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조영남의 화투 그림 '극동에서 온 꽃'
화가 겸 가수 조영남(71)이 다른 사람을 통해 그린 대작(代作)은 관행인가 사기인가. 미술계에서는 유명 화가들이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제자 또는 조수들이 밑그림을 그리는 사례가 많은 게 사실이다. 조영남이 화가 송모씨를 조수로 둔 것에 대해 “일반화된 관행”이라고 견해를 밝힌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언급대로 대작은 비일비재하다.

한국 단색화 바람의 선두주자인 박서보 화백은 작품의 윤곽과 구성 등 아이디어를 내고 밑그림은 대부분 조수들이 작업한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도 마찬가지다. 조수들이 작가의 지시대로 밑그림을 그리면 작가는 세부 수정작업을 거쳐 마무리하고 사인을 한다. ‘동구리’로 잘 알려진 권기수 작가도 조수들을 활용한다.

작가들은 전시회 때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수를 쓴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작품을 사는 컬렉터들도 이런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이 작품을 조수들을 시켜 공장에서 찍어내듯 작업한 것처럼 현대미술의 특성상 조수들의 손길도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미국에는 100명이 넘는 조수를 쓰는 작가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조영남의 경우는 다르다. 처음부터 송씨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마무리 작업을 한 후에 사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감독 아래 조수들이 밑그림을 그리는 여느 화가와 달리 조영남이 “이런 콘셉트로 그려 달라”고 요구하면 송씨가 혼자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송씨에게 작품당 10만원을 주고 상품을 주문하듯 그리게 했다는 점에서 문제다. 조영남은 조수를 쓴다는 사실을 한번도 밝힌 적이 없다.

조영남은 송씨가 7년간 300여점의 그림을 90% 이상 그려줬다고 폭로한 것에 대해 “조수를 먹고 살게 해주기 위해 그림을 그리라고 시킨 것”이라고 17일 해명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과 관련, “내가 원작을 그리고 송씨에게 찍어서 보내준다. 어떨 땐 밑그림을 그려오라 하고, 어떨 때는 채색을 하라고 했다. 일부 화투 작품에서 조수의 기술이 들어간 건 인정한다. 내가 주로 혼자 작업하는데 바쁠 때는 조수를 기용했고 함께하는 사람이 3∼4명 있다”고 설명했다.

화랑계에서는 조영남이 조수를 기용한 것은 작품이 잘 팔려나가고 방송 출연 등으로 그림 그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한다. 2010년에 조영남 개인전을 연 한 화랑 대표는 “당시 작업실에 가면 작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면서 1년에 두세 번 전시를 하고 방송 출연에도 바빠 조수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화랑에서 조영남의 작품을 구입한 한 컬렉터는 “그가 10만원 주고 그려온 그림이라니 완전히 속은 기분”이라고 분개했다.

조영남의 그림값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송씨는 자신이 그린 작품을 화랑 전시를 통해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까지 팔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조영남은 방송을 통해 엽서 한 장 크기의 1호짜리 그림은 50만원으로 20호 그림 기준으로 1000만원 정도에 판매된다고 소개한 바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한 서울 종로구 한 갤러리에서 조영남은 지난 3월 개인전을 열어 화투 그림으로 거액을 번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조영남은 “고작 600만원어치 팔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화랑계에서는 그의 작품 값이 최근 들어 껑충 뛰어올랐다고 얘기한다. 지난해 조영남 개인전을 개최한 한 화랑 대표는 “호당 40만원씩 100호짜리는 4000만원에 다수 거래했다. 주로 연예인들이 사갔다”고 밝혔다.

조영남은 방송에서 화투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자주 노출시켰다. 자신이 100% 그린 것처럼 홍보하고 그림을 팔았다. 한 전시기획자는 “대작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작가들은 예술에 혼을 바친다. 10년 20년 무명시절을 거치고 목숨 걸고 작업하는데 연예인 화가들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는 측면이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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