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충청 대망론이 뜬다는데…

입력 2016-05-17 17:39

총선 전에 새누리당의 충청권 중진 의원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당연히 선거 얘기가 오갔고, 충청 대망론은 재미있는 화젯거리였다.

“충청 대망론이 나올 때가 됐다. 유권자 수도 호남을 넘어섰는데, 영호남이 아니라 영충호남이라고 불러야 돼.”(의원)

“새누리당 당직자의 얘긴데, ‘무조건 기호 1번을 찍어줘야 충청 대망론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게 충청권에 대한 구전 홍보 전략이라던데….”(참석자 A)

“그 얘기는 나도 들었지만 정말 그런가. 그리고 그게 효과가 있을까.”(참석자 B)

“당연히 있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있고, 다른 현역 정치인들도 있어. 다음 대선에서 충청권이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있지 않을걸.”(의원)

저녁 안주 삼아 오간 ‘충청권 정치’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중진 의원의 결론은 내년 대선에 충청이 영호남 못지않은 단결력을 보일 것이며, 여권의 주요 축이 되는 것은 물론 보수 세력의 후보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신의 분석이자 희망이 섞인 것이니 듣는 이들은 동의해도 그만, 웃어넘겨도 그만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충청 출신이다. 정 원내대표나 정우택 의원 같은 이들은 대놓고 공개적으로 충청 대망론을 펼친다. 진작부터 나온 반 총장 대선후보 얘기는 ‘그가 이젠 달라졌다’는 분석까지 슬쩍 보태져서 점점 현실화시키는 사람들도 꽤 있다. 충청 출신 인사들을 만나면 이제는 정치 변방이 아니라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정말 충청권은 뜨고 있는 모양이다.

충청 대망론이 뜰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충청도 사람들이 들으면 불편하고 거북하겠지만, 대망론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쇠락해가는 보수 세력 전체의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다. 첫째, 보수의 확실한 대선 주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 틈새를 파고든 게 지역주의 기반의 대망론이다. 미래의 보수를 이끌 리더십이 나타나야 하는데 현재 정치권에는 없다. 그만큼 보수는 사람을 키우지도, 경쟁하지도 않았다. 중심이 없으니 지역주의를 가장 큰 상수로 놓고 선거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다.

둘째, 보수가 혁신에 게으르기 때문이다. 혁신은커녕 영남과 충청을 어떻게 조합해 다시 한번 정권을 유지해보자는 전략뿐 아닌가. 총선 결과를 놓고 치열한 논쟁과 반성을 통해 정책이나 가치, 이념(낡아빠진 이념 말고)적 지향, 또는 계층별 이해관계에 대한 입장 등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럴 조짐이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새누리당 상황은 기득권 싸움, 딱 그거다. 그러니 또 지역이라는 정치공학에 의존할 수밖에.

셋째, 이게 참 보수로서는 뼈아픈 현실인데, 보수의 중심세력이 확장적이지 못했다. TK 편중 인사(특히 사정 분야)와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이른바 ‘진박 마케팅’은 전체 보수를 왜소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보수는 중요한 가치나 이념을 공유하고 단결하지 못했다. 중심세력은 강력한 지역 정서로 무장, 오히려 배타적으로 돼버렸다. 보수 안에서 개별 지역주의 기반이 더 강화됐다는 뜻이다. TK와 PK 사이가 뜨악해지고, 충청권이 목소리를 높일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영남과 호남의 패권주의에 휘둘려 정치적 변방에 머물렀던 충청권이 앞으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권 내 분위기를 잡는 정치적 효과는 있을 게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보수에게 필요한 것은 지역주의 대망론 수준의 정치가 아니다. 오히려 배타성만 짙게 할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수 리더십의 정신적·물리적 세대교체다. 내년에 총선보다 더 참담한 성적표를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