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입문 7년 만의 쾌거… “한국어는 신비스럽고 매력적인 언어”

입력 2016-05-17 18:40 수정 2016-05-17 21:18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인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 21세 때야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지금도 교재를 통해 한국어를 배운 사람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제가 한국어를 선택했을 때 모두에게 확실히 이상해보였을 거예요. 이 나라(영국)에서는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아는 이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지요.”(16일 영국 BBC 인터뷰)

한국어를 배운 지 7년밖에 안 된 맹랑한 영국인 아가씨가 한국 최초의 맨부커상 수상의 일등공신이 됐다.

2005년 제정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연방 외 지역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주는 상이다. 수상작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번역한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28)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스미스는 21세 때까지만 해도 모국어인 영어만 할 줄 알았다. 케임브리지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면서 번역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때 영국에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과감히 한국어를 택했다. 17일 한국문학번역원 등에 따르면 스미스는 한국문학은커녕 한국 사람을 본 적도 없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한국어가 신비스럽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책은 전혀 읽어본 적도 없었지만 선진국인 것으로 보아 문학계가 활발할 것으로 짐작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런던 대학 한국학(한국문학) 박사과정을 졸업한 그는 “박사과정 2년째에 들어서면서 특정 소설을 한국어로 읽게 됐고, 한국문학을 선택한 것이 내게 안성맞춤이라는 느낌이 절실해졌다”고 국내 잡지에 기고한 글 ‘한국문학과 함께 가는 삶의 여정’에서 회고했다. 특히 형체나 구조면에서 한국 현대문학이 다양하게 문학성을 발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한국 작가들 중에서는 특히 한강에게 끌렸다는 그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하며 기회를 엿봤다. 2013년 이듬해 열릴 런던도서전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포르토벨로 출판사에 출간을 의뢰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수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2014년 런던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되면서 그의 번역 활동이 주목받는 등 행운의 여신은 그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 외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Human Acts)’도 번역했다. 배수아 작가의 ‘에세이스트의 책상(A Greater Music)’과 ‘서울의 낮은 언덕들(Recitation)’도 번역 중이다.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10월 레터북스에서, ‘서울의 낮은 언덕들’은 내년 1월 딥 벨룸 출판사에서 나온다.

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언어로 쓰인 소설을 영역하는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 출판사를 설립했다. 지난해 한국문학번역원 주최 워크숍에 참가해 그가 밝힌 번역 철학은 이른바 세계 비주류 문학을 번역하는 프로정신을 엿보게 한다.

“한국어와 같이 소수 언어권에서 온 책들은 소위 ‘다른 문화로의 창’과 같은 진부한 문구로 포장돼 출간됩니다. 저는 그런 점을 지양하고 문학서로만 홍보하고 싶어요.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한국을 들먹이며 마케팅하고 싶진 않거든요.”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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