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이웃나라 일본은 여전히 좋은 선택지다. 새로운 일본의 모습을 찾고 싶다면 최근 서양인이 자주 찾는 중북부 호쿠리쿠(北陸) 지방은 어떨까. ‘동양의 알프스’라 불리는 이곳엔 우리가 알던 일본의 모습과 사뭇 다른 보물이 숨겨있다.
신칸센 개통으로 가까워진 가나자와
도쿄를 떠나 고속철도 신칸센을 타고 서북쪽으로 2시간30분을 가면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역에 도착한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고요한 마을 가나자와는 지난해 일본 중북부지역을 지나 오사카로 연결되는 총 길이 700㎞의 호쿠리쿠 신칸센이 개통하면서 ‘떠오르는 여행지’가 됐다.
가나자와의 겐로쿠엔(兼六園)은 일본 3대 공원 중 하나로 꼽힌다. 가나자와성과 맞닿은 일본식 정원으로 넓이가 11만4000㎡(약 3만5000평)다. 커다란 연못을 중심으로 산책로가 잘 닦여져 있다. 공원 안 전통 찻집에서 녹차의 한 종류인 말차 다도문화를 체험할 수도 있다.
겐로쿠엔에는 ‘6가지 매력’이란 뜻이 담겨있다. 봄에는 매화와 벚꽃, 여름에는 철쭉과 제비붓꽃, 가을에는 단풍이 찬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겨울에는 눈에 덮인 푸른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어느 계절에 방문해도 실망하지 않을 아름다움을 지녔다. 육군기지였다가 가나자와대학 캠퍼스로 사용되던 것을 1996년부터 공원으로 정비했다. 겐로쿠엔과 이어진 가나자와성은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의 일등가신이었던 마에다 도시이에(1537∼1599) 가문이 지었다. 280여년간 가나자와를 지배하면서 다양한 전통 문화를 꽃피운 것으로 유명하다. 외부 침입에 대비한 요새 기능을 갖춘 가나자와 성곽에는 납성분이 함유된 기와가 하얀 빛을 띤다.
최근 가나자와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오미초(近江町) 시장이다. 1904년 세워진 후 지금까지 지역주민과 관광객의 ‘부엌’으로 불리는 곳이다. 지형 특성상 신선하고 맛좋은 먹을거리가 모두 모여든다. 식재료 상점과 음식점 185곳이 몰려 “무엇을 먹더라고 기대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신선한 회와 덮밥을 즐길 수 있는 유명 음식점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한다.
에도시대의 풍경이 남아있는 히가시차야가이(東茶屋街)는 옛 정취를 느끼기 충분하다. 유곽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춤과 전통예능, 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저녁시간엔 게이샤나 게이샤 연수생인 게이코를 볼 수 있다. 지역 전체가 중요전통 보존지구로 지정돼 건물 중 3분의 2가 메이지 시대 초기 지어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세계문화유산 시라카와고와 축제의 도시 다카야마
가나자와에서 버스로 1시간15분이면 기후(岐阜)현 오노(大野)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시라카와고(白川鄕)’를 볼 수 있다. 시라카와고는 폭설지역에 지어진 전통주택 갓쇼즈쿠리(合掌造)가 모여 있는 곳이다. 산맥과 마주한 이 마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지금도 주민 600여명이 살고 있다.
억새를 겹겹이 쌓아 도톰하게 한 뒤 경사가 심한 삼각형 모양의 지붕에 올린다. 지붕이 합장할 때의 손의 모양과 비슷해 ‘갓쇼’(합장)라는 이름이 붙었다.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는 삶의 지혜였다. 뾰족한 구조 아래 집 안에서는 주로 양잠을 했다고 한다. 억새 지붕은 30∼40년마다 한 번씩 바꿔야 한다. 주민들은 이 때 공동작업을 한다.
시라카와고 인근에는 일본 3대 와규로 꼽히는 히다규 음식점도 많다. 1인용 화로 위에 목련 잎을 올리고 된장, 야채, 고기를 올려 먹는 향토음식으로 누구나 좋아할 만하다.
기후현에는 축제로 유명한 다카야마(高山)도 있다. 다카야마는 17세기 에도시대 유산을 그대로 품어 ‘작은 교토’라고 불린다.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도시지만 프랑스 미슐랭 그린가이드 일본편에 소개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단체 관광객이 자주 들른다.
다카야마에선 매년 4월 14∼15일, 10월 9∼10일 전통 수레를 이용한 ‘다카야마 수레 축제’가 벌어진다. 전통 기법으로 만든 수레를 용이나 봉황으로 꾸민 뒤 독창적인 무용을 하면서 퍼레이드를 벌인다. 일본 3대 축제 중 하나로 하루에 2만명씩 축제를 찾는다. 축제 기간에 여자는 기모노, 남자는 하카마를 입고 전통 거리를 걷는다.
가나자와·오노·다카야마=글·사진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