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부원 <1> 하나님 흙으로 사람 지으시고 코에 생기… 창조 섭리 배워

입력 2016-05-17 20:47
박부원 장로가 도원요 가마에 장작불을 지피고 있다. 전호광 인턴기자

나는 도자기를 빚는 78세 노인이다. 1962년부터 빚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55년이 흘렀다. 오랜 세월 흙을 만지다보니 처음엔 없던 흰 수염이 턱을 덥수룩하게 덮었다.

도자기를 빚다보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감탄할 때가 많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창 2:7). 도자기도 비슷하다. 흙으로 모양을 다듬은 뒤 1300도의 가마 불 속에서 연단을 거치면 완성된 도자기가 나온다. 수천 점의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똑같은 도자기는 한 개도 없다. 그래서 가마의 문을 열 때마다 어떤 도자기가 들어있을지 항상 설렌다. 55년간 한결같이 가마 앞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 설렘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도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모두 각자의 개성대로 살아간다. 하나님도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스러움 안타까움 슬픔 기쁨 설렘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실 것이다. 나는 지금도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는 심정으로 도자기를 빚는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좋은 도자기는 천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다림, 세월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도자기는 불교와 관련이 깊다. 불교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도자기다. 그래서 내 주변엔 항상 보살이나 스님 등 불교인이 많았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 중에 크리스천은 극히 드물다.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종교를 숨긴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숨긴 적도 없다. 몇몇 스님들은 내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공방에 발길을 끊기도 했다.

국민일보로부터 ‘역경의 열매’ 원고를 요청받았을 때 내가 겪은 역경이 무엇일까 고민해봤는데 ‘외로움’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자기를 빚는 반세기동안 내 주변엔 하나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동료가 없었다. 그러나 78년 세월을 되짚어봤을 때 내가 거둔 ‘열매’가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실 도예에는 완성이 없다. 언제나 더 나은 작품을 위해 가마 앞으로 가야한다. 완성된 신앙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도자기 중에서도 특히 달항아리를 좋아한다. 달항아리는 18세기 정조 임금 때 탄생했다. 정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권좌를 놓고 쟁투를 했던 아픔을 겪었던 왕이다. 그는 서민의 생활을 잘 알았고,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런 정조가 늦은 밤 달을 보다가 ‘도자기로 이런 아름다운 달을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했을 것이고, 도공들은 왕의 뜻을 따라 흙을 빚었다.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도공들은 왕이 자신들을 알아주는 것이 기뻤을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게 달항아리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나를 지금까지 보살펴주시고 동행해주셨다. 그런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정조 시대 도공들과 같은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었다. 이제부터 반세기 넘게 도자기를 빚으며 만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정리=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약력=1938년 전북 김제 출생. 1962년 도암 지순탁 선생을 따라 도예에 입문. ‘분청사기 개인전’ ‘도쿠시마시 후원회 초대전’ ‘지당 박부원 개인전’ ‘한국전통도예 특별전’ ‘화가 도자 1000년의 미’ ‘왕실도자 500년, 50년의 설레임’ ‘도원요 초대전 법고창신’ 등 전시회 다수. 왕실도자기협회 회장, 세계도자기엑스포 추진위원 역임. 광주왕실도자기 초대명장. 현 한국도자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