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준협] 김영란법과 공포마케팅

입력 2016-05-17 17:40

‘김영란법’은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수수할 땐 무조건 형사처벌하고, 100만원 이하일 경우에는 직무와 관련한 경우에만 과태료를 부과한다. 다만 사회통념상 받아들여지는 소액의 금품은 허용하는데, 이번 시행령 초안에서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으로 상한선을 제시했다.

이 기준은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보다 훨씬 완화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선물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젠 5만원까지 허용된다. 경조사비는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되고 식사는 3만원으로 상한선이 동일하다. 예를 들어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초등학교 교사가 5만원 상당의 금품을 선물 명목으로 받는 게 허용된다는 뜻이다. 법 적용 대상자는 공무원 101만명, 공직 유관단체 36만명, 사립학교 교직원 66만명, 언론인 21만명, 총 224만명쯤인데 총인구의 4.4%, 취업자의 8.6%에 해당한다.

요식업계는 이 법 때문에 매출이 4조원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계산법이 특이하다. 외식 고객 중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가 16.3%이고 3만원 이상 쓴 고객도 전체의 5%라면서 총 외식 매출액 83조원의 5%인 4조15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손실액을 만들어냈다. 일종의 공포 마케팅이다. 요식업계의 피해와 불안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과도한 주장은 오히려 설득력을 떨어트린다.

우선 법 적용 대상자가 너무 부풀려졌다. 지금도 공무원은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라 3만원이 넘는 식사를 제공받을 수 없으며 사립학교 교사도 공무원에 준하는 윤리 기준을 요구받고 있다. 추가되는 법 적용 대상자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0만명이 채 안 된다는 뜻이다. 이들이 400만원어치씩 업무 관련 식사 접대를 받아야 매출액이 4조원 줄어든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사,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에 가까운 주장이다. 만약 직무 관련 식사 접대가 이 정도로 성행한다면 오히려 김영란법을 더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영란법 때문에 내수가 위축될 것이란 주장도 과하다.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부정부패가 줄면서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부정부패를 줄인다면 경제성장률이 무려 0.65% 포인트나 올라간다. 기업들이 공직자에게 청탁하고 금품을 제공할수록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기업의 접대비가 불필요하게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청탁하지 않는 기업은 아예 기회가 박탈될 수도 있어 사회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김영란법 시행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이유다.

김영란법은 오히려 더 강화되어야 한다. 정부가 처음 국회에 제출한 법안에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있었는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통째로 빠져버렸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지위를 남용해 사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국회의원의 민원 처리는 청탁에서 아예 제외시켜버렸다. 국회의원에 대한 청탁이 민원으로 포장돼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다.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사에 대한 선물이 5만원까지 허용되면서 촌지가 부활될 수도 있다. 촌지가 횡행하는 학교에서는 공정한 교육 기회를 기대할 수 없으며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 모두 피해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법 집행의 실효성도 강화해야 한다. 금품 제공자와 받는 자 모두 처벌되기에 금품수수가 음지로 숨어들 수 있으며, 200만명에 달하는 법 적용 대상자와 그 배우자까지 감시하는 것은 현 행정력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