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최범] 공공디자인 20년, 반성과 과제

입력 2016-05-17 19:42

지난해 ‘공공디자인 진흥에 관한 법률’(공공디자인법)이 제정됐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디자인 관련법이다. 첫 번째는 1977년 제정된 ‘산업디자인진흥법’이다. 이 법은 말 그대로 경제 개발기에 산업디자인을 진흥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주관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이다. 하지만 공공디자인법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해 만든 법이다. 문화부는 기존의 산업 일변도 정책을 넘어서는, 디자인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구체적인 대상으로 공공디자인을 주목한다.

나는 한국의 공공디자인이 95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지역 정체성 구축이라는 과제를 부여받으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지방화 시대를 맞아 지자체들은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분주했고, 그런 가운데 너나없이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채택한 것이 심벌마크와 캐릭터 등 이른바 ‘CI(Community Identity) 디자인’이었다. 덕분에 CI 디자인 회사들은 대목을 맞았다. 하지만 지역 차별화를 위해 경쟁적으로 도입한 디자인이 비슷비슷해지면서 오히려 지역 이미지를 획일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빚고 말았다.

지방자치제 실시 10년 후 한국의 공공디자인은 제2기를 맞게 되는데, 그 서막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이었다. 청계천 복원 자체는 토목공사였지만 2005년 한국공공디자인학회(당시 회장 권영걸)가 여기에 제1회 공공디자인대상을 수여함으로써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로 화려한 조명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이렇다. 우선은 제1기의 지역 CI 디자인 시대와 달리 디자인계가 공공디자인을 적극적으로 호명함으로써 드라이브를 걸었다. 제1기에서 지자체와 디자인계의 관계가 발주자와 수주자 또는 갑과 을의 관계였다면 제2기의 그들은 동업자 또는 갑과 갑의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디자인계가 능동적으로 공공디자인 붐을 일으키고 참여했다.

공공디자인 제2기는 양적, 질적으로 커다란 성장을 보여주었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면도 많이 드러냈다. 첫째, 공공디자인이 지나치게 정치화되었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공공디자인의 정치적 효과를 깨닫게 되면서 기존 개발 사업들이 공공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이 청계천 프로젝트 때문이라고 한다면 분명 망발이겠지만 그 덕을 전혀 보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사실 청계천 프로젝트는 대박이었다. 당시 전국 곳곳에서 청계천 프로젝트의 복제물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둘째, 공공디자인의 상업화다. 정치인들이 공공디자인의 정치적 효과로 재미를 보았다면 디자인계는 공공디자인이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을 눈치챘다. 기존의 디자인 업체들이 너나없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인 디자인 단가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디자인 업계에 공공디자인은 대안 시장이 된 것이다.

지난 20년간 지방자치 시대와 함께해온 한국의 공공디자인이 과연 디자인의 공공성을 구현하고, 지역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쉬이 긍정적 답변을 할 수가 없다. 지적했다시피 정치인들은 공공디자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디자인계는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챙겼을 뿐 공공디자인의 대의는 실현되지 못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은 그 정점에 자리한다. 이제 공공디자인법 제정을 계기로 한국의 공공디자인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지난 20년간의 궤적에 대한 반성과 함께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패러다임 구축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최범 디자인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