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바람결에 코끝에 와 닿는 5월의 아카시아꽃 향기, 화사하게 피어나는 6월의 장미. 참 향기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해 오뉴월은 잔인하기만 했다.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의 사진 기록은 지금 보아도 36년 전에 벌어진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미개하고 잔인하고 끔찍하다. 정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맞는지 의심이 갈 일이 광주에서 벌어졌고 전국에서 대학생과 시민이 함께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져 전시와 같던 그때, 나의 아버지는 서울 신촌의 한 대학병원에 심장질환으로 입원 중이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위중한 아버지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한데, 화염병과 최루탄과 물대포가 난무하는 세상과 겹쳐 현기증이 날 만큼 어지러웠다. 세상물정 모르던 그때, 병원 정문을 지키고 있던 계엄군의 탱크는 지나치게 위협적이었다. 탱크 양옆으로 병원 담벼락을 타고 검붉은 장미가 길게 무리지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부조화로 느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권력에 눈먼 신군부에 맞서 싸우는 핏발 선 자유의 함성이 마치 장미 군락을 피로 물들여 붉은 물결로 목메어 외치는 것 같기도 했던 그해, 장미꽃이 다 떨어질 무렵 나의 아버지는 독을 뿜어내듯 격앙된 세상을 뒤로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핏빛으로 피어나는 6월의 붉은 장미를 볼 때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된 민중의 거룩한 투쟁과 함께 그해 나의 아버지 일을 떠올리게 된다.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일에 제창하는 것이 국론 분열을 이유로 불허됐다.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하더라도 이 땅에 참다운 민주주의의 기둥을 세우고자 피 흘려 저항하며 한 줄기 섬광처럼 사라져간 이들의 찬연하게 빛나는 그 정신만은 누구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치열한 내면의 상처를 다스리고 핏빛으로 올라와 빛과 향을 뿜어내던 그날의 장미처럼, 잔인한 현대사에 스러져간 못다 핀 광주의 꽃봉오리도 붉은 장미로 다시 피어나리라.
김세원(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김세원] 탱크와 장미
입력 2016-05-17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