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중부 카라간다시. 수도 아스타나에서 서남쪽으로 200㎞ 떨어진 카라간다 외곽 마이쿠툭 지역. 이곳은 소득수준이 카자흐스탄 1인당 GDP 6472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빈민 지역이다. 주민 상당수가 구 소련 시절 노동자 계층이었고, 지금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 한부모 가정이 많으며 범죄 발생률도 높다. 지난 10일 찾아간 이곳은 오랜 겨울을 끝내고 건조한 흙바람이 불어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유독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 있었다. 11년 전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의 송장헌(54) 기대봉사단이 문을 연 ‘옐도스교육센터(교육센터)’와 4년 전 개원한 ‘한국카자흐스탄복지센터(복지센터)’다. 두 센터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7000명이 거쳐 가는 등 다민족 국가 카자흐스탄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
가난한 지역에 공부와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
카자흐스탄은 경제 성장을 거듭하며 교육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교육열도 한국 못지않게 높아 ‘양 팔고 낙타 팔아 교육 시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현실은 학교가 부족해 공립학교의 경우 오전과 오후 2부제 수업을 한다. 최근엔 경제사정이 악화돼 어려운 가정은 보충수업이나 과외 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공립학교 학생들은 러시아와 카자흐어 영어 등 3개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만큼 보충수업이 절실하다.
복지센터 어린이 영어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20명의 어린이들이 빼곡히 앉아 회화를 익히고 있었다. 교사 마트비엔커 스벳라나(36·여)씨는 아이들에게 과거 시제로 말하는 법을 설명했다. 멜니코바 다리야(11)양은 “오후반 수업을 하기 전에 영어를 배우고 간다”며 “무료로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교실 밖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어머니는 “아이가 갈 곳이 없어 불안했는데 센터를 알게 돼 감사하다”며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센터는 2012년 현대엔지니어링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후원하고 기아대책이 수행기관이 돼 시작됐다. 이후 기아대책에서 지속적으로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복지센터는 현재 어린이를 위한 카자흐어와 영어 학습, 체스와 미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성인을 위한 직업훈련 과정도 개설하고 있다. 네일아트와 피부미용, 마사지, 헤어미용 등으로 지원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날 자신의 아들 머리를 깎으며 미용 훈련을 받고 있던 아나스타시아(30·여)씨를 만났다. 3월부터 미용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염색 기술을 익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미용실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보태고 싶다”며 “주변의 미용학원을 다닐 여유가 안 돼 포기했는데 이제 얼마의 돈이라도 벌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부터 미용실에서 일한다.
현재 복지센터에 등록된 학생은 어린이 185명, 직업훈련생 50명이다. 지난해까지 피부 관리 분야가 취업률 60%로 가장 높았고, 네일아트와 마사지도 절반 이상 취업해 높은 취업률을 보이고 있다.
복지센터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옐도스교육센터에서도 언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옐도스는 ‘민족의 친구’란 뜻이다. 지난 11일 찾아간 이곳은 카자흐어와 영어, 한국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파트너십
복지센터와 교육센터가 이렇게 현지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 것은 시청과 구청, 인근 학교와의 파트너십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기아대책은 지역사회와 협력했다. 공립학교인 82번학교 알마감베터바 울잔 교장은 “학교와 옐도스센터는 8년째 우정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며 “카자흐스탄은 어려운 가정이 많아 유치원에 보내기도 어려운데 그때마다 센터가 다양한 방법으로 도왔다”고 말했다.
카라간다시 류바르스카야 이리나(48·여) 부시장은 이날 복지센터를 직접 방문했다. 그는 “마이쿠툭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주민들이 많았는데 센터 덕분에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외국의 기관이 진심을 다해 일하는 게 보기 좋다”고 말했다.
옐도스센터는 구청과도 10년 전부터 양해각서(MOU)를 체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카아에프 알럼잔(35) 구청장은 “옐도스센터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도우며 지역 주민들을 격려하고 있다”면서 “센터 덕분에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언어를 배우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교육센터와 복지센터가 이렇게 칭찬을 받게 된 것은 기독교적 마인드로 무장한 교사 덕분이기도 하다. 두 센터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최에빌레나(56·여)씨는 카레이스키(고려인)로, 82학교 교감을 지내다 3년 전 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기독교인인 그는 센터가 타인을 순수하게 돕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이쿠툭이란 지역은 ‘기름 우물’이란 뜻으로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며 “센터의 목표는 지역 주민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센터 교사는 모두 14명으로 이 중 고려인이 3명이며 기독교인 비율은 70%다. 최 디렉터는 “교사들은 수업 시작 30분 전부터 교육생을 위해 기도한다”며 “센터가 주민들의 영적·육적 필요를 채우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송장헌 봉사단은…기독교 마인드로 무장한 봉사센터, 7000명에게 희망 줬다
송장헌 기대봉사단은 카자흐스탄에서 ‘신기한’ 외국인으로 통한다. 첫째는 카자흐스탄 사람도 못하는 카자흐어를 구사해서다. 그것도 고급 단어 일색이다. 한 번은 관청에 갔다가 카자흐어를 말하자 주위에 있던 직원이 놀라워하며 방송국에 전화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독립할 때까지 구 소련 지역이었다. 나라를 되찾은 이후 공식어는 카자흐어와 러시아어가 됐지만 국민 대다수가 러시아어에 익숙해 카자흐어를 쉽게 배우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카라간다시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마이쿠툭에 교육센터와 복지센터를 세웠다는 것이다. 범죄와 마약, 알코올 등의 문제가 많은 이곳에 ‘신기하게도’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센터 진입로는 험악하다. 주 도로에서 센터로 들어오는 200m 길은 비만 오면 진흙탕으로 변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센터에 오는 것을 좋아한다.
송 기대봉사단이 카자흐스탄에 사랑을 전하게 된 것은 NGO 사역이 최적이라고 판단해서다. 여기엔 치밀한 사전 조사가 뒤따랐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육센터가 결론이었다. 그는 2005년 기아대책 봉사단이 된 뒤엔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교육 법인을 설립했고, 카자흐어를 배우며 현지인 속으로 들어갔다. 관공서나 단체의 관계자 등과 교제하며 교류를 넓혀나갔다. 때마침 기아대책이 보내준 의류 구호품을 활용해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송 기대봉사단은 “철저한 사회과학적 조사로 아이들이 방과 후 갈 데가 없다는 것과 음주나 마약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교육열은 강하지만 재정 여건이 안 되는 부모들의 반응에 착안해 교육·복지센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2012년 카자흐스탄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인근 학교 교장들이 자발적으로 추천한 결과였다.
카자흐스탄은 130개 민족들이 모여 사는 다민족 국가다. 한국과도 관련이 깊다. 1937년 구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 고려인 10만명이 카자흐스탄에 정착했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그는 “카자흐스탄은 한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은 곳”이라며 “이곳을 잊지 마시고 사랑을 전해달라”고 말했다.
카라간다(카자흐스탄)=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다음세대를 위한 약속’] 기독교 마인드로 무장한 봉사센터, 7000명에게 희망 줬다
입력 2016-05-17 19:54 수정 2016-05-17 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