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정신적 피해’ 인정 받을까

입력 2016-05-17 04:02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가족모임 대표(오른쪽)가 16일 소송 자료를 들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와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를 상대로 한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소송 대상은 정부와 옥시레킷벤키저, SK케미칼, 애경산업 등 22개 업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공동소송대리인단’은 16일 살균제 사망자 유족과 피해자 등 436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사망자의 경우 1인당 5000만원, 폐 손상 등 질병 피해자는 3000만원, 사망·피해자 가족들은 각 1000만원씩이다. 청구 총액은 약 112억원이다. 다만 법원 감정을 통해 피해자별 손해액이 구체적으로 산정될 경우 전체 청구금액은 5∼10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공동소송대리인단은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는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한 것처럼 표시하고, 유해성을 알고도 제조·판매한 책임이 있다”며 “정부도 유해성 심사 등 피해자들을 유해물질에서 보호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한 데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의 최대 관심사는 법원의 정신적 손해배상(위자료) 인정 액수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기업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우 실제 손해액의 몇 배에 달하는 배상액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다. 지난 2월 미국 미주리주 배심원단이 존슨앤드존슨의 파우더를 수십년간 쓰다가 난소암으로 숨진 재키 폭스씨 유족에게 840억원(7200만 달러)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전체 840억원 중 약 720억원은 징벌적 손해배상금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제도가 하도급 거래와 신용 및 개인정보 이용 등 관련 피해에 한해 제한적으로 도입된 상태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는 현 상황에서 신체 감정을 통한 ‘재산상 손해배상액’은 일정한 계산법에 따라 책정된다. 문제는 국내 법원이 정신적 피해와 같은 무형의 피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편이라는 점이다. 과거 유사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 청구한 액수 이상의 위자료가 책정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이날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자체 브랜드(PB)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용마산업 대표 김모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17일에는 홈플러스 측 실무자 2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 과정에서 흡입독성 시험이 생략된 원인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 13일에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신 전 대표와 옥시 전 연구소장 김모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이들이 회사를 옮기면서 가져간 옥시 관련 자료들을 확보했다. 신 전 대표는 2005년 옥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고, 2010년 불스원 지분을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양민철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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