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성성하고 주름 깊은 노인들이 안방극장의 주인공이 됐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디마프)에서다.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지만 단 한 번도 주인공의 자리에 선 적이 없는 이들이 한꺼번에 전면에 나섰다.
신구(80), 김영옥(79), 김혜자(75), 나문희(75), 주현(73), 윤여정(69), 박원숙(67), 고두심(65). 주인공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로 나와 극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해 줬던 이 ‘대배우’들이 이렇게 모두 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섰다.
예쁘고 잘생기고 늘씬하고 젊은 배우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 드라마라니. 색 바랜 노인들의 꿈, 삶, 사랑 이야기라니.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 지난 14일 첫 회 시청률은 4.9%, 2회 시청률은 4.0%(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이름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코믹하게 다뤄진 노인들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배우들의 평균 나이는 극 중 나이보다 조금 더 많은 73세다. 이들은 시니어벤져스(시니어+어벤져스)라고 불리며, 청춘들에게 뒤지지 않는 열정으로 드라마를 꽉 채우고 있다.
밝고 긍정적이고 억척스러우면서도 사려 깊은 나문희(문정아 역), 소녀 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으며 다소 떨어지는 생활력으로 민폐 엄마가 돼 버린 김혜자(조희자 역),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 있었지만 꿋꿋하고 쿨한 고두심(장난희 역) 등이 펼쳐내는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드라마는 노인들의 이야기에 판타지를 담지 않았다. 극 중 숱하게 나오는 대사처럼 이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꼰대들’이다. 케케묵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주정을 하고, 국민학교 동문회만 하면 서로 싸우기 바쁘다. 어린시절 콤플렉스는 칠순이 넘어서도 여전하다. 친구 딸을 보자마자 “넌 결혼 안 하냐”고 타박하고, 허허들판에서 노상방뇨도 서슴없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묘하게 밉지 않다. 나의 엄마, 이모, 할머니, 아빠, 할아버지가 슬며시 떠오르면서 애증 가득한 한숨과 웃음이 나온다. 그들의 고단하고 고독한 일상이 눈물을 쏙 빼놓고, 지독했던 지난 세월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무엇보다 여덟 노인의 생생한 캐릭터가 몰입도를 높여준다.
극 중 화자(話者)이면서 모두의 딸인 고현정(박완 역)은 “어른들 얘기 모아서 책 한 권 내보라”는 엄마 난희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말이 되는 소릴 해. 늙은이들 얘길 누가 읽어? 아무도 관심 없어.”
모질게 내 뱉었던 고현정의 이 단언은 틀렸다. 결국 극 중 박완도 노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로 한다. 시청자들 또한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하고 있다. 전혀 우아하지 않고, 마냥 서글프지도 않고, 아주 웃긴 것만도 아닌 노인들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TV 리뷰-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노인들의 얘기가 시청자 웃기고 울리고
입력 2016-05-17 2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