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리뷰-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노인들의 얘기가 시청자 웃기고 울리고

입력 2016-05-17 20:28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노년의 삶과 사랑, 꿈을 다룬 드라마다. 60∼80대 베테랑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았다. 왼쪽부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주현, 고현정, 고두심, 윤여정, 김혜자, 김영옥, 나문희, 신구. tvN 제공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 깊은 노인들이 안방극장의 주인공이 됐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디마프)에서다.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지만 단 한 번도 주인공의 자리에 선 적이 없는 이들이 한꺼번에 전면에 나섰다.

신구(80), 김영옥(79), 김혜자(75), 나문희(75), 주현(73), 윤여정(69), 박원숙(67), 고두심(65). 주인공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로 나와 극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해 줬던 이 ‘대배우’들이 이렇게 모두 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섰다.

예쁘고 잘생기고 늘씬하고 젊은 배우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 드라마라니. 색 바랜 노인들의 꿈, 삶, 사랑 이야기라니.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 지난 14일 첫 회 시청률은 4.9%, 2회 시청률은 4.0%(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이름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코믹하게 다뤄진 노인들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배우들의 평균 나이는 극 중 나이보다 조금 더 많은 73세다. 이들은 시니어벤져스(시니어+어벤져스)라고 불리며, 청춘들에게 뒤지지 않는 열정으로 드라마를 꽉 채우고 있다.

밝고 긍정적이고 억척스러우면서도 사려 깊은 나문희(문정아 역), 소녀 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으며 다소 떨어지는 생활력으로 민폐 엄마가 돼 버린 김혜자(조희자 역),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 있었지만 꿋꿋하고 쿨한 고두심(장난희 역) 등이 펼쳐내는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드라마는 노인들의 이야기에 판타지를 담지 않았다. 극 중 숱하게 나오는 대사처럼 이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꼰대들’이다. 케케묵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주정을 하고, 국민학교 동문회만 하면 서로 싸우기 바쁘다. 어린시절 콤플렉스는 칠순이 넘어서도 여전하다. 친구 딸을 보자마자 “넌 결혼 안 하냐”고 타박하고, 허허들판에서 노상방뇨도 서슴없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묘하게 밉지 않다. 나의 엄마, 이모, 할머니, 아빠, 할아버지가 슬며시 떠오르면서 애증 가득한 한숨과 웃음이 나온다. 그들의 고단하고 고독한 일상이 눈물을 쏙 빼놓고, 지독했던 지난 세월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무엇보다 여덟 노인의 생생한 캐릭터가 몰입도를 높여준다.

극 중 화자(話者)이면서 모두의 딸인 고현정(박완 역)은 “어른들 얘기 모아서 책 한 권 내보라”는 엄마 난희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말이 되는 소릴 해. 늙은이들 얘길 누가 읽어? 아무도 관심 없어.”

모질게 내 뱉었던 고현정의 이 단언은 틀렸다. 결국 극 중 박완도 노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로 한다. 시청자들 또한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하고 있다. 전혀 우아하지 않고, 마냥 서글프지도 않고, 아주 웃긴 것만도 아닌 노인들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