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카이’ 도로서 실내기준 20배 넘는 오염물질 배출

입력 2016-05-16 18:07 수정 2016-05-16 21:42


한국닛산의 경유차 ‘캐시카이’도 폭스바겐처럼 ‘임의설정’으로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적발된 캐시카이는 유럽연합(EU)의 최신 경유차 배출 허용기준인 ‘유로6’가 적용된 차량이다. 유로6에 맞춘 경유차에서 임의설정이 확인되기는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조사대상인 나머지 경유차도 실내 인증시험 기준치를 훌쩍 뛰어넘는 질소산화물(NOx)을 내뿜었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경유차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연비 올리고 단가 내리는 ‘임의조작’=환경부는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가 불거지자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국내에서 판매량이 많은 경유차 20종에 대한 실내외 실험을 진행했다. 이 중 캐시카이에서 배출가스재순환장치(EGR) 작동이 중단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일반적인 운전 조건에서 EGR 기능이 저하되도록 변조하는 ‘임의설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2010년 이후 제작된 경유차에 주로 장착된 EGR은 배출가스 일부를 다시 유입시켜 연소 온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줄이는 장치다.

환경부에 따르면 닛산은 ‘흡기온도’를 임의설정의 변수로 삼았다. 자동차는 엔진에서 연료를 연소시킬 때 외부 공기를 엔진룸으로 빨아들인다. 통상적으로 외부 온도 20도에서 30분 정도 주행하면 자동차 엔진의 흡기온도가 35도를 넘어선다. 캐시카이의 EGR은 흡기온도가 35도에 이르자 작동을 멈췄다. 실제 주행 상황에서 EGR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른 차량들은 엔진 내부 공기가 45도를 넘어선 뒤에야 과열 문제로 EGR 작동이 중지된다.

이렇게 변조된 캐시카이는 실외 도로주행 시험에서 임의설정된 폭스바겐 ‘티구안’과 비슷한 수준으로 질소산화물을 뿜어냈다. 실외 도로주행 시험에서 캐시카이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실내 인증기준(㎞당 0.08g)의 20.8배인 1.67g에 달했다.

지난 3월 9일과 지난달 20일 두 차례 열린 환경부 자동차 전문가회의에서 참석자 전원은 캐시카이가 임의설정됐다는 의견을 내놨다. 환경부 관계자는 “연비를 올리기 위해 임의설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닛산은 흡기파이프를 금속이 아닌 고무로 제작해 부품 단가를 낮췄다”고 말했다. 이어 “닛산 측은 흡기온도가 35도를 넘어가면 흡기파이프의 고무 재질 부분이 180도까지 과열돼 손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임의조작 확인되지 않으면 처벌 못해=‘인증기준’ 자체도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대상 경유차 가운데 BMW 520d 한 종만 제외하고 모두 실제 도로에서 인증기준을 넘어서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했다.

실제 도로 조건에 대한 배출 허용기준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으니 처벌할 근거도 없다. 캐시카이처럼 임의조작이 확인돼야만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자동차업체가 스스로 개선책을 내놓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내년 9월부터 EU와 함께 중·소형 경유차를 대상으로 실제 도로조건 배출 허용기준을 도입한다. 실내 인증기준의 2.1배(0.168g/㎞)가 기준치다. 2020년부터 이 기준치는 실내 인증기준의 1.5배로 강화된다.

세계적인 흐름과 달리 국내에 등록된 경유차는 늘고 있다. 정부가 환경개선부담금을 면제하고 질소산화물 배출기준을 낮추는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한 탓이다. 정부는 경유택시를 매년 1만대 보급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달 중으로 마련되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에 경유차 규제 방안도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결과로 경유차 규제 강화와 ‘퇴출론’에 한층 무게가 실리게 됐다. 환경단체들은 뒤늦게 경유차 관리·감독 강화에 나선 정부를 비판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성명을 내고 “폭스바겐 사태로 이미 ‘클린디젤 신화’는 무너졌다”며 “경유차 활성화 대책을 철회하고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근본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세종=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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