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습기 살균제’ 국가책임 묻고 징벌적 배상제 도입해야

입력 2016-05-16 19:3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가족 436명을 대리해 살균제 제조사·판매사·원료공급사 22곳과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16일 제기했다. 청구금액은 사망 5000만원, 폐손상 등 질병 3000만원, 가족의 정신적 위자료 1000만원 등 일단 112억원이다. 예전 소송이 개별적으로 진행된 것이라면 이번 건은 전국 피해자들을 모으고 옥시레킷벤키저 등 모든 관련 기업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국가에도 엄중한 책임을 묻는 총체적이고 본격적인 소송이다.

민변 측은 제조·판매사의 경우 제조물책임법에 의해 제품 표지에 허위 부분이 있거나 유해성을 알고도 판매했다면 책임을 묻기에 어려움이 없다는 입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책임 문제다. 정부가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제품에 국가인증마크를 부여해 피해를 확대시킨 만큼 배상 책임이 있다는 게 민변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국회에서 사과를 거부한 점으로 미뤄 법적 책임을 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면서 모든 걸 법제 미비 탓으로 떠넘기고 있다.

물론 국가 책임 여부는 법리적으로 잘 따져봐야 한다. 그간 산발적 소송에서 국가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1심에서 딱 한 번 나왔다. 나머지 소송에선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한데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이 사태를 십수년간 방치한 데 대한 책임이 전혀 없을 순 없다. 게다가 유독물질 관리와 유해성 심사에 소홀했던 정부의 ‘직무유기’ 잘못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인권과 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적극적 판단이 요구된다.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앗아가는 악의적 기업은 우리 사회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런 만큼 국회는 해당 기업의 책임을 엄히 묻기 위해 미국식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