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 뒤집혔다. 비주류가 주류가 됐고, 언더독은 챔피언이 됐다. 2015-2016 시즌 세계 축구는 또 한 번의 변화와 마주했다.
이기는 방법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 대세는 짧은 패스플레이 위주의 공격축구 ‘티키타카(Tiqui-taca)’였다. 이젠 점유율보다 집중력, 화려함보다 실용성을 앞세운 압박과 역습이 대세다. 스타플레이어 한두 명의 그라운드 장악력보다 감독의 확고한 축구철학, 이를 완성하는 팀 스피릿이 더 중요해졌다.
그렇게 뒤집힌 판에 균열이 생겼다. 그곳을 뚫고 샛별이 떴다. 그동안 팀 내 간판스타의 그늘에 가려졌거나 무명에 가까워 이름조차 생소했던 선수들이다. 이들은 다음달 10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를 시작으로 세계 축구를 호령할 스타플레이어로 도약했다.
◇우승만큼 짜릿한 인생역전=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맨체스터 시티, 아스날, 첼시, 리버풀의 각축장이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두 시즌 전까지 2부리그를 전전하던 레스터 시티에게 왕좌를 내줬다. 이 격변의 주인공은 레스터시티 스트라이커 제이미 바디(29·잉글랜드)다.
바디는 속도가 빠르고 슛이 정확한 돌격형 골잡이다. 레스터 시티의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은 그의 발끝에서 완성됐다. 투지와 집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골의 70%를 후반전에 넣었다. 후반 추가시간 득점 비율은 9%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29일 맨유와의 14라운드 홈경기에서 11경기 연속 골을 달성했다. 2003년 맨유 공격수였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의 최장 기록(10경기 연속)을 12년 만에 경신했다. 그렇게 36경기에서 24골 6어시스트를 작성했다. 시즌 중반까지 줄곧 득점 선두였지만 막판 징계를 받고 2경기에 결장하면서 토트넘의 해리 케인(25골)에게 득점왕을 내줬다.
그의 삶은 인생역전 드라마다. 의료용 부목공장 노동자였고, 청각장애 친구를 괴롭힌 무리를 폭행해 한때 전자발찌를 찼지만 하루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10년 8부 리그 스톡스브리지파크 스틸스에서 30파운드(5만원)를 받았던 그의 주급은 이제 8만 파운드(1억3500만원)다. 성공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시즌엔 생애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도전한다.
◇은하수에서 가장 밝게 빛난 별=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밤하늘 은하수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별들의 전쟁터다. 은하수의 중심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와 리오넬 메시의 FC 바르셀로나가 있다. 두 팀은 세계 각국의 스타플레이어들을 경쟁적으로 사들인다. 두 팀 선수의 몸값 총액은 1조7000억원. 웬만한 중견기업 3곳의 자산총액보다 많다.
이런 은하수 속에서 유독 밝게 빛난 별이 있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앙투안 그리즈만(25·프랑스)이다. 그리즈만은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전술을 완성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고 빼앗은 한 번의 공격기회에서 ‘킬패스(Kill-pass)’를 받아 골을 넣었다. 38경기 22골. 팀 전체 득점(63골)에서 3분의 1을 그가 혼자 책임졌다.
슛은 모두 92회. 슛 성공률은 23.9%로 높은 편이다. 역습에 최적화된 스트라이커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패스만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키 175㎝, 몸무게 72㎏의 왜소한 체구로 적진을 이리저리 휘젓고 직접 역습을 마무리했다. 헤딩골은 2개. 페널티킥이나 프리킥 같은 세트피스 골은 3개다. 나머지는 17골은 자신의 발로 만든 필드골이다.
그는 오는 29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마지막 역습을 준비하고 있다. 결승전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다. 호날두는 이 대회에서 그리즈만(7골)의 2배 이상인 16골을 넣었다. 유력한 득점왕 후보다. 하지만 단판승부인 결승전에서 중요한 것은 파괴력보다 집중력이다. 우승은 단 하나의 결승골로 가려진다.
◇유럽 정복 꿈꾸는 폴란드의 희망=9분 동안 5골. 바이에른 뮌헨 공격수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28·폴란드)의 ‘벼락 골’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유례없는 진기록이다. 그는 지난해 9월 23일 볼프스부르크와의 6라운드 홈경기에서 0-1로 뒤진 후반 6분부터 9분 동안 5골을 몰아쳤다. ‘다크호스’ 볼프스부르크를 50분 넘게 공략하지 못했던 뮌헨은 후반전에 투입한 그를 앞세워 5대 1로 대승했다.
레반도프스키의 축구인생은 클라이맥스로 들어섰다. 한때 뮌헨의 간판스타였던 토니 크로스(현 레알 마드리드), 지난 시즌 득점왕 알렉산더 마이어(프랑크푸르트)에게 분산됐던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자신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뮌헨의 분데스리가 사상 첫 4연패를 이룬 일등공신이다. 32경기에서 30골을 넣고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조국 폴란드의 유로 2016 우승. 이 대회 예선에서 53개국 선수들 중 가장 많은 13골을 넣고 폴란드를 본선으로 이끈 그에게 유럽 정복은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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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16 21:53 수정 2016-05-17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