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아전인수… 국책銀 책임론 틈타 ‘성과연봉제’ 압박

입력 2016-05-16 04:00

금융 당국이 조선·해운사 부실을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국책은행 책임론이 불거지자 이를 금융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의 명분으로 활용하면서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드라이브’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필요한 국책은행의 조직개편 논의를 금융권 전반의 성과주의와 과도하게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9월 총파업’을 예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노·정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당국은 금융공공기관 성과연봉제와 관련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정조준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9개 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산은과 수은은 구조조정이라는 시급한 현안을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조속히 성과주의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며 “성과연봉제 도입 등 철저한 자구노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자본확충이 시급하다 해도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압박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당국의 이런 움직임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15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9개 금융공공기관(기술신용보증기금·기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신용보증기금·예금보험공사·예탁결제원·자산관리공사·주택금융공사) 중 직원 평균보수 대비 성과급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산은(33.7%)과 수은(31.7%)인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위는 지난 2월 초 발표한 ‘성과중심 문화 확산방향’에서 “금융공공기관 성과보수 비중이 직원평균 19%(2014년 기준)로 공기업 최소기준 30%보다 낮고, 민간은행(15%)보다는 높다”며 금융공공기관에 성과주의가 안착되지 않았다고 했었다. 이 기준대로라면 공공기관 중에서도 가장 규제 수준이 낮은 기타공공기관인 산은과 수은의 경우 이미 공기업의 성과보수 기준을 넘어섰다는 말이 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최대 10조원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책은행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를 별개의 문제인 성과연봉제와 연결짓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국책은행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낙하산 기관장 임명이나 퇴직임원 재취업 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지 못할 경우 수년간 축적돼 왔던 부실 관리·감독 문제는 또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성과연봉제는 노사 간 제대로 된 논의나 평가 기준에 대한 합의 없이 표류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지난 14일 사상 첫 금융공기업 지부 합동대의원대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반대를 위한 9월 총파업을 결의했다. 김문호 금융노조위원장은 “지난 8년간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이 초래한 조선·해운업 부실로 국가경제가 대재난 사태를 맞았지만 경제위기 극복에 총력을 쏟아야 할 금융 공기업들은 성과연봉제 때문에 노사관계가 파탄난 상황”이라며 “정부와 금융위, 사측은 금융노조와 전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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