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사업권자인 현대아산은 올 초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로 400억원 규모의 자산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된 현대상선은 지난주 글로벌 얼라이언스(해운동맹)에 들어가지 못했다. 20일까지 용선료(선박 사용료) 협상을 마무리짓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갈 수도 있다.
1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그룹 총수의 친족 회사를 밀어줬다며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대가 걱정하는 것은 공정위의 제재보다 시장의 시선이다. 현대증권은 지점에서 쓰는 복합기에 큰 역할을 하지 않는 HST를 끼워넣었다. 컴퓨터·주변기기 유지보수 업체인 HST는 현정은 회장의 동생인 현지선씨와 그녀의 남편 변찬중씨가 각각 지분 10%, 80%를 보유하고 있다. HST는 10%의 마진율을 올리며 지난해 2월부터 10개월간 4억6000만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
현대로지스틱스가 일감을 몰아준 택배운송장 납품업체 쓰리비는 변찬중(40%)씨와 그의 두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2년부터 현대로지스틱스로부터 과도한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경쟁 업체가 택배운송장 장당 40원 전후를 받았다면 쓰리비는 55∼60원을 받았고 마진율도 27.6%로 다른 업체 마진율(0∼14.3%)보다 배가량 높았다.
공정위 조사로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가 총수 일가에게 이익을 몰아주기 위해 손실까지 감수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예상되고 있다.
정창욱 서비스업감시과장은 “로지스틱스는 이미 롯데로 넘어갔고 현대증권도 매각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지만 현대가 손실에 따른 책임은 져야 할 것”이라며 “소액주주들의 집단 소송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들의 시선도 좋지 않다. 택배 물품의 발송인·수취인 정보를 적는 택배운송장 사업은 주로 중소기업들이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로지스틱스는 계약 기간이 1년 정도 남은 기존 거래처와 계약을 해지하고 신생 업체인 쓰리비와 계약했다. 덕분에 쓰리비는 2012년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11%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공정위도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부당 지원을 통해 중소기업의 사업 기회를 축소시켰다”고 판단했다.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 분위기도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주말 탄생한 제3의 해운동맹 ‘디(THE)얼라이언스'에 한진해운은 합류했지만 현대상선은 제외됐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하자 현대상선은 조만간 해외 용선주를 초청해 설명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20일까지 현대상선에 용선료 협상을 마무리하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다.
연초부터 악재들이 줄을 이으면서 현대그룹의 자구 노력에 힘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공정위 조사 결과가 현대의 자구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관련기사 보기]
☞
☞
엎친 데 덮친 현대그룹… 자구 노력에 ‘찬물’
입력 2016-05-15 18:13 수정 2016-05-15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