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늘나라의 희한한 질서

입력 2016-05-15 21:23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메시아 상(像)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위대한 선생으로, 어떤 이는 성공의 모델로, 어떤 이는 복을 가져오는 다목적 자판기로 예수님에 대한 메시아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은 그리 생경스러운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당대에 그렇게 이해했으니까요.

누가복음의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메시아 됨의 정체를 밝힌 유일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자신을 종교지도자나 학자, 정치지도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시중드는 자’라고 정체를 밝힙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를 놓고 싸움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뭇 민족들의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를 한다.” 이어 제자들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돼야 한다.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돼야 한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희한한 질서를 제시합니다. 세상 나라의 질서와는 완전히 역전된 규준점을 제시한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이가 가장 낮은 이의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서로 낮아져 살아가는 희한한 유토피아 같은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독일에 사는 동안 디아코니아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그런 희한한 분위기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전혀 이 땅에 속해 있지 않은 듯한 새로운 존재들, 조금이라도 더 내려가고 양보하고 기꺼이 도울 준비 태세가 늘 되어 있는 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독일에는 거대한 사랑 실천 기관인 디아코니아가 약 3만1000개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디아콘이라는 섬김 전문가들이 역동적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합니다. 일반 사회복지와 달리, 철저히 신앙에 기반해 ‘신학적 실천'을 모색하는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질서를 다시금 강조하면서 제자들에게 명토를 박습니다. 누가 더 높으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드는 사람이냐.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시중드는 사람, 디아코노스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제자들은 가장 큰 사람이 누구인가 싸움하면서 앞으로 자신들이 영광과 권력과 힘을 소유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메시아로서의 주님을 머릿속으로 상정한 것이지요. 하지만 제자들의 이러한 메시아 상을 예수님은 망치로 사정없이 깨어버리신 것입니다. 지배자로서 힘을 갖고 은인처럼 행세하려는 제자들의 메시아 상 자체를 예수님은 전면 부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시중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섬긴다면 우리 스스로가 시중드는 존재,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존재, 이웃의 짐을 기꺼이 지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홍주민 목사 (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

약력=△한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신학박사 △한신대 연구교수, 서울외국인근로자센터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