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빚 4500만원을 못 갚아 지난해 4월 개인 파산 선고를 받은 오모(72·여)씨는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채무 면책’을 신청했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으니 이를 탕감해 달라는 것이다. 법원이 면책 결정을 내리면 빚은 사라진다.
그런데 법원은 오씨의 파산 경위를 살피다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오씨의 지난 2년간 신용카드 사용내역에 피부과에서 수차례 미용시술을 받거나 성형외과에서 비만치료 등을 받은 기록이 있었다.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거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브랜드에서 옷을 구입한 내역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매월 5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법원은 오씨와의 면담조사에서 “카드를 쓴 사람이 누구냐”고 추궁했다. 오씨는 “(카드를) 아들과 딸이 대신 썼다”고 털어놨다. 오씨의 아들은 수입차를 타고 면담 장소에 함께 왔다고 한다. 빚을 탕감 받지 못한 오씨 측은 현재 항고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은 올 들어 1∼2월 파산 선고를 내린 1727명 중 65세 이상 노인은 428명(25%)이라고 15일 밝혔다. 병원 치료비나 생계비를 갚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씨처럼 자녀가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카드로 대출을 받아 자녀에게 송금한 뒤 파산·면책을 신청하는 경우도 적잖다.
최근 카드 대출금을 자녀에게 보낸 뒤 파산·채무 면책을 신청한 A씨(59·여)도 같은 이유로 면책이 불허됐다. 법원 관계자는 “‘채무 면책’의 경우 파산에 이르게 된 경위와 연령, 재산 등을 꼼꼼하게 조사한다”며 “자녀의 채무를 부모가 부담하는 소위 ‘불효 면책’의 경우 빚을 절대 탕감해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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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 빚 대신 떠안고 70 노모 법정에… 법원 ‘불효 채무면책’ 불허
입력 2016-05-15 18:33 수정 2016-05-15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