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볼 스트라이커’ 벤 호건은 30대 후반이후 전성기를 누렸다. 10대 후반에 시작한 프로 생활 내내 악성 훅에 시달렸던 그는 매일 피나는 연습을 했다. ‘한 달을 연습하지 않으면 갤러리가 알고, 일주일을 연습하지 않으면 동료 선수들이 알고,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바로 내가 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길 정도였다.
벤 호건이 1960년대 완성한 골프 스윙이론은 지금 세계 골프계의 최신 트랜드가 됐다. 바로 ‘원 플레인(One Plane)’ 스윙이다. 백스윙의 각도와 다운스윙이 각도가 한 치 오차도 없이 일치시켜 골프공을 친다는 뜻이다. 그는 ‘모던 골프’란 책을 통해 이를 ‘윈도 페인 이론(Window Pane Theory)’으로 정리했다. 셋업시 골퍼의 목부터 클럽헤드 끝까지 한 장의 유리판이 걸려 있다면 골퍼의 스윙은 절대 이 유리판을 깨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골프클럽을 드는 각도와 내려오는 각도가 같아야만 한다.
‘한국의 벤 호건’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다. 키가 크지 않고 미디어에도 무뚝뚝한 사나이,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 하루도 연습하지 않는 날이 없는 골퍼, 치열하게 스윙을 연구하는 사람,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20·30대 젊은 골퍼들을 다 이겨버린 남자…. 바로 모중경(45)이다.
모중경은 미국에서 골프를 배웠다. 고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이민을 떠났다. 고교 2학년 때인 1989년에는 전미고교골프선수권 주(州) 대표로 아메리칸컵에 출전해 단체 우승과 개인전 2위를 차지했다. 골프 명문인 네바디주립대를 다닐 때는 여러 유명 골프 레슨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타이거 우즈, 애덤 스콧의 코치로 유명한 부치 하먼과 마이크 밴더에게서 배웠다.
그 때부터 모중경은 스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호건의 원 플레인 스윙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의 스승인 밴더가 호건의 원플레인 스윙 추종자라는 점도 한 몫 했다. 모중경은 피나는 노력으로 국내에서 이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선수가 됐다. 모중경은 늘 말한다, “연습장에 있을 땐 하나도 지겹지 않다”고.
알고 보면 모중경은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친절한 사람이다. 후배들이 자신에게 스윙에 관한 조언을 구하면 정말 아낌없이 퍼 준다. 지금은 일본투어 5승을 올린 김경태(30)가 2014년 스윙폼을 바꾸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를 도와준 사람이 모중경이다. 일본에서 전화를 걸어온 후배에게 모중경은 깜짝 놀랄 만큼 해박한 지식으로 김경태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고쳐줬다. 김경태가 “모중경 선배님 때문에 내 스윙이 고쳐졌다”고 말하고 다니자, 모중경은 “요즘 경태가 나를 자주 언급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핀잔을 줬다”고 했다. 그리곤 껄껄 웃었다.
모중경의 결정적 약점은 퍼팅이었다. 지난해까지 19년 동안 네 차례 상금랭킹 10위 안에 들었지만 퍼트 난조로 우승과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나이가 40대 중반에 이르면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고, 최근엔 리더보드에 잘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 어깨와 왼쪽 무릎, 발뒤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12개 대회에서 5번 컷 탈락했고 한 차례도 톱10에 들지 못했다. 상금랭킹 68위로 시드까지 잃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시드전을 치른 모중경은 간신히 올 시즌 투어 카드를 다시 손에 넣었다.
그리고 결국 우승을 거머쥐었다. 모중경은 15일 대전 유성컨트리클럽(파72·6796야드)에서 열린 KPGA 투어 매일유업 오픈 최종일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5개, 보기 1개로 6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18언더파 270타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를 친 강경남(33·리한스포츠)을 3타 차로 여유있게 따돌린 것이다. 2006년 7월 SBS 가야오픈 이후 무려 10년 만의 우승이다. 해외대회까지 포함하면 2008년 아시아투어 상하 타일랜드 PGA 챔피언십 이후 8년 만이다. 국내 투어 통산 5승째.
모중경의 우승이 확정되자 많은 후배들이 나와 맥주 세례를 퍼부었다. 오랜 기간 쉼 없이 훈련을 거듭하며 스윙을 가다듬은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모중경의 한 없이 부드럽고 어떤 군더더기도 없는 스윙 폼을 보고 있으면, 그의 인생이 보인다. 처절하게 연습해온 그의 집념이 보인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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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16 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