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라에 온 코피노 “메신저 덕분에 꿈 회복”

입력 2016-05-15 21:17
㈔메신저인터내셔널이 12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메모리스에서 개최한 ‘2016 메신저 멤버스데이’에서 참석자들이 필리핀에서 온 코피노 등의 손을 잡고 격려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필리핀 앙겔레스 지역에 살고 있는 그레이스(42·여)는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 자녀들의 엄마다. 한국인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세 명의 자녀들을 키우다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곤 했다. 코피노를 도와준다는 한국인 후원단체에 속아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더 이상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는 최악의 상황까지 직면했다. 그러다 코피노를 돕는 ㈔메신저인터내셔널(메신저·이사장 김춘호)을 만났다. 이곳의 도움으로 집을 얻었고 아이들도 앙겔레스 지역에 있는 좋은 학교에 다닌다. 유치원 교사로서 경제활동도 하고 있다. 그레이스는 “제 아이들도 누군가의 인생에 꿈을 이뤄주는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필리핀 앙겔레스 홀리에인절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에스더(21·여)씨 역시 3년 전 메신저를 만난 뒤 변화된 삶을 살고 있다. 코피노인 김씨는 한국인 아빠와 연락이 두절돼 필리핀 엄마와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메신저를 통해 꿈을 회복하게 됐다”며 “고통 받는 코피노를 돕는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그레이스와 김씨는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메모리스에서 열린 ‘2016 메신저 멤버스데이’에 참여해 후원자들에게 한국어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메신저에서 후원을 받는 3명의 코피노와 가족, 교사 등이 서툰 한국어로 애국가를 불렀다. 마음이 뭉클해진 참석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2008년 창립된 메신저는 한국인 아빠로부터 버림받은 필리핀의 코피노와 베트남의 라이따이한 등 혼혈아동들을 돕는 기관이다. 코피노는 현재 필리핀에 약 2만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라이따이한은 베트남전쟁 때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92년 한국과 베트남 수교 후에는 ‘신라이따이한’들이 태어나고 있다.

코피노와 라이따이한은 현지에서 온갖 불이익을 받으며 정체성의 혼란 속에 살아간다. 메신저는 교육과 자활을 중점적으로 지원한다. 아이들에게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을 받도록 돕고 엄마들에게는 직업을 갖도록 지원한다. 긴급구호와 치료비 등 기초적 후원도 진행한다.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김동호 목사는 이날 “우리는 일본에게 억압 받은 것을 문제 제기하지만 (필리핀 베트남 등) 우리가 다른 민족의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잘 안 한다”며 “우리 민족 때문에 고통 받고 평생 한 맺힌 민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피노와 라이따이한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때 사역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춘호 이사장도 “성공한 삶이란 자신의 명예와 부가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 그들에게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라며 “수많은 혼혈아들이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전했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