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寄生獸)’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어느 날 우주에서 날아든 기생수라는 생물들은 인간의 뇌로 침투해 뇌를 잠식하고 인간을 숙주로 삼아 살아간다. 겉모습은 보통의 사람이지만 본능에 따라 다른 인간을 포식하면서 인간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법조계에도 기생수가 있다. 브로커라 불리는 무리다. 이들은 서초동 법조타운 그늘에 숨어들었다가 선량한 얼굴로 의뢰인들을 현혹하고 법조 생태계를 망가뜨린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같은 재력가가 범죄에 휘말려 변호사 시장을 기웃거릴라치면 이들이 먼저 몰려든다.
법조 브로커들은 대개 “내가 당신을 구해 줄 수 있다”며 수작을 건다. 수사·사법 기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불신 따위가 서식 환경을 조성한다. 이들은 자신을 ‘뭔가 있는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 번듯한 명함을 내밀고, 고위층과의 친분을 자랑한다. 동문이나 동향 모임에 나갔던 판·검사들이 낯선 브로커와 연락처를 주고받고 폭탄주라도 돌려 마시면 그들의 수첩에 오르기 십상이다. 브로커의 ‘형님’ ‘아우’로 그들의 리그에 이름이 유통되는 것이다.
브로커들이 선호하는 우량 숙주는 전관(前官) 변호사들이다. 막 시장에 뛰어든 전관들은 사건을 가져다 줄 손발이 필요하고, 브로커는 양분 공급처이자 방패막이가 돼 줄 건실한 몸통이 필요하다. 양쪽 이해가 맞아떨어져 공생 관계가 탄생한다. 이번 법조비리 수사에서 검사장 및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와 브로커 간의 유착이 드러난 건 우연이 아니다.
검찰은 꼬리가 밟힌 브로커들을 추적 중이다. 이들은 놀라운 생존본능이 작동해 본격 수사 전 모두 종적을 감춘 상태다. 소수의 전관 변호사들도 처벌될 터다. 그렇다고 숱한 브로커들이 기생하는 지금의 법조 생태계가 변화할 것 같지는 않다. 이 얽힌 먹이사슬로부터 자유로운 판·검사는 과연 얼마나 될까. 만화에서 기생수는 인간에게 말한다. “결론은 이래. 우리는 하나야.”
지호일 차장
[한마당-지호일] 법조계 ‘기생수’
입력 2016-05-15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