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중단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입증된 게 아닌가요. (공단에서 쫓겨난) 우리만 억울한 셈이 됐습니다.”
정기섭(64)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대체부지를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가있는 와중에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했다. 지난 9일 미얀마로 간 그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지난 2일에 끝낸 입주기업 피해조사 결과를 반영해 이달 중순 정책 발표를 하겠다고 했다”며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걱정했다.
정 회장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도 정부 정책을 꼬집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던졌지만 표면적으로 바뀐 건 거의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달에도 계속됐고 5차 핵실험 가능성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그는 “개성공단 폐쇄 이후 정말 암담하고 답답한 날들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협회 비상대책위는 정부가 실시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피해조사와 관련해 회의를 소집했다. 정부 조사 결과와 협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피해조사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알아보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정 회장은 정부의 피해조사 방식에 불만을 내비쳤다. 그는 “북측에서는 세관을 통과할 때 장부를 일일이 기록해 증거물로 남아 있다”며 “그런데 우리 정부는 증거로 남을 만한 반입·반출 신고서를 꼼꼼히 작성하지 않았으면서 북측 장부에 적힌 목록은 인정 못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피해조사에서 누락된 피해액도 크다는 설명이다. 통일부 측은 “개성으로 반출하는 모든 물품은 반드시 신고해야 하는데 당시에 신고되지 않은 물품은 입증하기 어렵다”며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불법행위에 해당돼 인정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간 기업들 사이에서는 5월 위기설이 돌았다. 정 회장은 “기업이 한 분기 동안 정상적으로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 유지해 나가기 어려워지는 건 사실”이라며 “앞으로 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해 부도에 처하는 기업이 여럿 나올 것 같다”고 우려했다. 현재 협회에서 도산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 기업은 123개 업체 중 50% 정도다.
협회는 정부의 중단 조치 직후 비대위를 꾸려 기업 피해조사, 특별법 제정 촉구 등 여러 활동을 해왔지만 4월에는 주춤했다. 정 회장은 “4·13총선을 앞두고 정부 비판을 하면 의도치 않게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며 “정부의 피해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기로 한 것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직 정부의 피해조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정 회장은 “이번에도 정부의 보상 대책이 없을 경우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만약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헌법소원과는 별개로 국회를 통해서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해나갈 것”이라며 “개성공단 재개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야권도 이번 총선에서 다수가 됐으니 기대를 걸어본다”고 말했다.
100일간 바뀐 것은 없지만 정 회장은 “개성공단은 재가동될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재가동해도 못 들어가는 기업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정 회장은 “우리 나름대로 개성공단이 남북 간의 적대감과 이질감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자긍심도 있었다”며 “이를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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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폐쇄 피해 보전 위한 특별법 제정해야”
입력 2016-05-14 04:00 수정 2016-05-14 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