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화사해진 이왈종 ‘행복도’… 현대화랑서 ‘제주 생활의 중도’展

입력 2016-05-15 19:50
이왈종 작가가 지난 12일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현대화랑에서 ‘제주 생활의 중도’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여유롭게 골프치는 모습을 현대판 민화처럼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행복을 찾아 교수직도 팽개치고 45세이던 1990년 제주로 내려갔던 동양화가 이왈종(71). 이제 제주 사람이 된 그가 더 알록달록해진 ‘현대판 행복도’를 들고 4년 만에 서울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여는 ‘제주 생활의 중도’전이다. 중앙대 회화과 출신으로 1979년부터 추계예술대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보직 교수 생활에 넌더리가 났다. 1년만 쉬자며 안식년을 얻어 내려갔던 제주에 아주 정착했다. 제주의 풍광과 공기, 여유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림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중도’인가. 12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 화백에게 물었다. “평범하게 사는 거, 그거 어렵습니다. 나이 들어 더 실감합니다. 뉴스 한 번 보세요. 못된 짓하고 철창신세 지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요. 다 과욕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의 작품은 늘 그렇듯 서민들의 장수와 행복에 대한 염원을 담았던 옛 민화의 현대 버전을 보는 느낌이다. 소박한 집에서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노부부, 개와 고양이, 새, 사슴, 연못, 풀, 자동차 등이 삽화처럼 평면적으로 배치됐다. 작품마다 화사하게 매화가 피었다.

한가로이 골프를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대거 나왔다. 인물들의 포즈가 해학적이다. 공이 바다로 날아가 어쩔 줄몰라 하는 남자에게 채를 바꿔주러 급하게 뛰어가는 캐디, 공이 벙커에 빠져 난감해 하는 이를 내심 좋아하며 지켜보는 친구의 표정이라니. 1998년 제주의 한 골프장에서 의뢰가 들어와 시작한 ‘골프장 행복도’는 곳곳의 클럽하우스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노년에 골프 칠 수 있는 팔자만 되라’는 한국 사회의 덕담은 건강과 부, 사교를 모두 누리고 싶은 욕망이 집약된 것이 아닌가.

소재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색이 더 강해지고 환해졌다. 동백, 밀감, 수선화 등 제주 특유의 식물들은 낙원 같은 분위기를 돋우는 장치들이다.

2013년 서귀포 정방폭포 초입에 ‘왈종미술관’을 건립했다. “기부야말로 행복해지는 길”이라며 1년에 3000만원씩 기부한다. ‘안분지족’의 메시지를 던지는 현대판 이왈종 행복도는 6월 12일까지 볼 수 있다(02-2287-3536).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