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밥에 고깃국 먹는다. 월북하라.’ 군 복무 시절 전방 철책 위로 이런 글이 적힌 삐라가 월남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이밥’은 쌀밥을 말합니다. 쌀의 옛말은 ‘니’이지요. ‘니밥’이 두음법칙에 따라 ‘이밥’이 된 것입니다. ‘니’는 입쌀이나 메벼를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입쌀은 멥쌀을 보리쌀 등의 잡곡이나 찹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고 메벼는 찰기 없는 멥쌀 벼를 이르는데, 도정(搗精·곡식을 찧거나 쓿음)을 하면 밥쌀이 되는 것이지요.
‘니’가 쌀인 것은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하루 세 번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또는 그 밥을 먹는 일을 뜻하는 ‘끼니’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끼’는 ‘때’를 의미합니다. ‘밥때에 먹는 쌀’을 뜻하던 끼니가 지금은 ‘식사’의 의미로만 쓰입니다.
이맘때면 공원이나 들에 이팝나무꽃이 하얗게 핍니다. 좀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쌀밥을 푸짐하게 담아놓은 것 같습니다. 이 꽃이 필 무렵, 입하(立夏) 즈음은 양식이 동나고 아직 보리도 익지 않아 허기에 시달리는 헛헛한 보릿고개를 넘던 때입니다. 하얀 꽃들이 ‘이밥’ 같다 해서 이팝나무라 했다는데, 안타깝고도 가슴 저린 이야기입니다.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라는 지금, 꽃이 이밥으로 헛보일 정도로 곤궁하게 살았던 선대들을 생각해봅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이밥은 쌀밥… 하얀 쌀밥 같은 이팝나무꽃
입력 2016-05-13 18:02 수정 2016-05-13 18:17